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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간첩 할머니》: 읽고, 말하고, 다시 질문하기

2026년 8월 2일 더북소사이어티 회현점에서 열린 KHU 전시기획 세미나 ‘아시아·장소·연대’의 발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를 중심으로, 전시가 불러낸 기억과 증언, 냉전의 장소, 그리고 미디어의 의미를 살핀다. 발표 자료의 반복 설명과 약력을 덜어내고 주요 작품에 대한 해석과 질문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1. 전시의 주제는 작품을 묶는 틀인가

이 발표는 박찬경이 예술감독을 맡았던 미디어시티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를 다시 읽는 데서 출발한다. 신기술과 매체의 새로움을 강조하기보다 작품과 주제 사이의 관계를 살핀 이 전시에서, 주제는 모든 작품을 하나의 의미로 통합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박찬경의 글은 주제를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설명하며, 작품을 평가하거나 포획하는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경계한다. 전시를 둘러본 관객에게 뒤늦게 떠오르는 관계와 무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1

따라서 ‘귀신’, ‘간첩’, ‘할머니’는 작품마다 배정되는 고정된 분류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개인의 기억을 오가게 하는 어휘에 가깝다. 이 어휘들을 읽고 말하는 과정에서 전시의 의미는 완결되기보다 다시 질문된다. 발표 역시 전시의 정답을 설명하기보다, 각각의 작품이 세 어휘와 만나는 지점을 따라가며 오늘의 시선에서 그 관계를 검토한다.

2. 박찬경의 작업과 전시의 입구

박찬경은 사진, 설치, 영상과 글을 통해 분단과 냉전, 종교와 무속, 역사적 재현의 문제를 다루어왔다. 그의 작업에서 전통은 계승해야 할 유산인 동시에 현대의 시선에 낯설게 나타나는 대상이다. 무속과 산수, 민화 등의 형식을 불러오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시도라기보다, 근대화가 무엇을 밀어내고 잊도록 했는지 묻는 과정으로 읽힌다. 발표는 《안구선사》의 전시 장면과 작가의 작업 이력을 짚으며 이러한 관심이 전시기획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폈다.2

《귀신 간첩 할머니》의 입구에서는 서문과 함께 굿의 장면을 생각할 수 있다. 이상순 만신의 서울 새남굿으로 열린 전시는 세월호 참사 등 죽음과 상실이 사회를 뒤흔든 2014년의 시간과 겹친다. 이때 굿은 낯선 전통을 보여주는 볼거리만이 아니라, 죽은 이와 살아 있는 이 사이에서 애도와 기억을 매개하는 행위로 다가온다.

박찬경의 다큐멘터리 〈만신〉도 이러한 관계를 살피게 한다. 영화 속 김금화와 카메라의 관계는 누가 누구를 이용하거나 재현하는지 쉽게 나눌 수 없다. 카메라는 무속을 외부에서 기록하는 도구이면서, 만신이 세계와 관계 맺는 또 하나의 도구로 읽힌다. 이 지점에서 미디어는 첨단 장비만을 뜻하지 않는다. 방울과 부채, 신체와 목소리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와 접촉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까지 그 의미가 확장된다.3

3.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세 어휘

‘귀신’은 공식적인 역사에서 누락되거나 억눌린 기억,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영혼들을 불러낸다. 과거는 끝난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풍경과 신체 안에 남아 되돌아오는 것이다. ‘간첩’은 식민과 냉전, 국경과 분단이 만들어낸 경계의 인물을 가리킨다. 이를 통해 냉전은 이미 종결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에서 지속되는 복수의 경험으로 읽힌다. ‘할머니’는 시대를 통과해온 증인이며, 거대한 역사의 서술에서 밀려난 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존재다.

세 어휘는 아시아의 식민 경험과 근대화, 한반도와 비무장지대, 여러 지역의 단절과 연결을 가로지른다. 전통을 다시 불러오는 일 역시 순수한 원형을 회복하는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박찬경은 전통이 이미 국가 이데올로기에 이용되고 오염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탐구하려는 시도까지 냉소로 막아서는 태도를 경계한다. 서구의 시선과 그 시선을 의식하는 반응 사이에서 벗어나, 실패와 오류를 포함한 구체적인 실천의 가능성을 살피려는 것이다.1

4. 단절의 장소는 어떻게 매체가 되는가

딘 큐 레의 작업은 베트남과 알제리의 탈식민운동이 맺었던 관계를 되돌아본다. 아시아풍의 프랑스 가구를 쌓아 만든 구조물은 관객과 음악 사이를 가로막는 바리케이드이지만, 동시에 노래를 들려주는 매체로 기능한다. 과거의 국제적 연대와 오늘의 정치문화 사이에 생긴 거리를 드러내면서, 막는 것과 전달하는 것이 한 장소에 함께 놓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1

이 작업에서 ‘간첩’과 ‘냉전’은 특정 국가의 과거를 설명하는 표지에 머물지 않는다. 한 지역의 역사는 다른 지역의 독립운동과 문화, 오늘의 청중과 연결된다. 장벽의 해체가 곧 냉전 경험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면, 전시는 현재에도 남아 있는 단절의 방식과 다시 연결될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5. 풍경에 겹쳐진 재난의 시간

요네다 토모코의 〈적운〉 연작은 구름과 꽃, 비둘기처럼 평온해 보이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촬영 날짜와 장소를 읽으면 사진은 다른 시간과 연결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2011년의 히로시마 평화의 날과 종전 기념일은 1945년의 원폭과 전쟁을 불러온다. 발표에서는 여름 하늘의 구름을 통해 원폭과 원전 사고의 기억이 포개지는 방식에 주목했다. 눈에 보이는 풍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방사능과 상실의 기억이 현재를 흔드는 것이다.

〈평행하는 타인의 삶—조르게 간첩조직과의 조우〉는 리하르트 조르게 간첩단이 활동했던 장소들을 추적한다. 익숙한 장소의 표면 아래에 숨은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역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요네다의 사진은 ‘귀신’과 ‘간첩’ 사이를 오간다. 사진을 보는 일은 눈앞의 장면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곳에 축적된 시간과 설명을 함께 읽는 일이 된다.

요네다 토모코의 작품 전시 전경. 발표 자료 24쪽에서 발췌.
요네다 토모코의 작품 전시 전경. 발표 자료 24쪽에서 발췌.

니나 피셔와 마로안 엘 사니의 〈공포 속에 산다—3·11 이후〉도 두 시기를 마주 놓는다. 작가들은 후쿠시마 피난민들에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5년 영화를 상영하고, 주민과 배우가 참여하는 토론과 즉흥 재연을 진행했다. 냉전기의 핵 공포를 다룬 영화가 동시대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현실과 만난다. 과거의 허구는 현재의 경험을 말할 수 있게 하는 매개가 된다.4

참여자들이 무력감과 상실, 고립의 불안을 몸과 목소리로 표현할 때, 보이지 않는 위협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드러난다. 발표에서는 이 과정을 상처를 함께 대면하는 현대적인 해원의 가능성으로 읽었다. 동시에 재난을 희생자의 총수로만 기억하는 태도를 경계했다. 하나의 큰 사건 안에는 서로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삶과 죽음이 있으며, 미디어가 그것을 어떻게 전하는지 묻는 일이 중요하다.

니나 피셔·마로안 엘 사니, 〈공포 속에 산다—3·11 이후〉, 2013. 발표 자료 27쪽에서 발췌.
니나 피셔·마로안 엘 사니, 〈공포 속에 산다—3·11 이후〉, 2013. 발표 자료 27쪽에서 발췌.

6. 구술과 세대 사이의 풍경

조해준과 이경수의 작업을 살피는 데서는 조해준과 아버지 조동환이 나눈 대화가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개인이 겪은 사건과 기억은 드로잉과 글, 조각과 영화로 옮겨지며 집단기억과 만난다. 〈사이의 풍경〉과 〈바다가 육지라고 생각하는 배〉는 구술에서 출발한 이야기, 제작 과정의 기록, 땅 위에 놓인 배의 어긋난 상황을 함께 제시한다.5

이러한 형식은 매끈하게 정리된 공식 역사와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전달한다. 소박한 글 그림과 투박한 조형은 증언을 정돈된 사실의 목록으로 바꾸기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미술관의 계단과 이동 통로에 놓인 작업은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 ‘사이’를 통과하는 관객의 움직임과도 만난다. 발표에서는 이 장소의 성격과 작업의 형식을 함께 읽었다.

‘할머니’는 여기서 생물학적인 여성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권력의 역사에서 밀려난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태도로 확장된다. 발표 중에는 나의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1950년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전해 들은 기억이 역사와 접촉하는 순간을 통해, 기록하는 일에 앞서 듣는 일이 놓여 있음을 생각했다.

조해준·이경수의 설치 전경. 발표 자료 31쪽에서 발췌.
조해준·이경수의 설치 전경. 발표 자료 31쪽에서 발췌.

7. 산과 언덕,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접촉

민정기의 〈금강산 만물상〉은 아름다운 산수이면서 분단으로 접근이 가로막힌 장소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발표에서는 기암괴석의 풍경을 귀신과 정령, 오래된 믿음이 머무는 무대로 읽었다. 그림을 따라 산을 유람하는 감각과 실제로는 그곳에 닿기 어려운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금강산은 ‘귀신’, ‘간첩’, ‘할머니’가 서로 떨어진 범주가 아니라 하나의 장소에서 교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귀레쉬의 〈야외 전화 부스〉는 통신 기반시설에서 소외된 알레비 마을 주민들이 휴대전화 신호를 찾아 언덕을 오르는 모습을 담는다. 통신 기술이 있어도 누구나 같은 조건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사람들이 신호가 잡히는 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대화를 이어가려는 모습에는, 국가의 배제와 일상의 끈질긴 의지가 함께 드러난다.

이때 언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외부와 접촉하기 위해 몸으로 오르는 장소가 된다. 딘 큐 레의 바리케이드가 단절과 전달을 동시에 수행했다면, 이 작업의 지형은 연결의 불평등을 드러내면서도 그 경계를 넘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미디어는 기계의 성능만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서 누구와 접촉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8. 주문, 암호, 방언으로서의 미디어

발표에서 미디어를 주문과 암호, 방언에 겹쳐 생각한 것은 서로 다른 세계를 잇는 방식에 주목하기 위해서였다. 귀신을 부르는 목소리, 경계 안팎을 오가는 신호, 개인과 공동체 안에서 전해지는 말은 모두 전달과 해석의 문제를 품는다. ‘이을 접(接)’이라는 글자는 이러한 관심을 압축한다. 작품과 전시는 과거를 눈앞에 복제하기보다, 서로 떨어져 있던 기억과 사람, 장소가 접촉하는 조건을 만든다.

전시가 호출하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공포만이 아니다. 2026년 우리가 직면한 전쟁과 비인간, 기후의 문제는 어떤 불안을 만드는가. 과거로부터 오늘까지 이어지는 공포가 있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현재에 전해지는 불안은 어떤 형태인가. 냉전과 개인의 서사를 관통하는 감각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이 질문들은 ‘1인칭—미디어—직시—반성’, 그리고 ‘역사—기록—주목’이라는 발표의 마지막 어휘들로 이어진다. 공포를 추상적인 감정으로만 다루지 않고, 누가 그것을 경험하고 누구의 말이 기록에서 빠지는지 살피는 일이다. 《귀신 간첩 할머니》를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에서 밀려난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미지를 통해 그들과 접촉하며, 오늘의 삶과 관계를 다시 묻기 위해서다.

KHU 전시기획 세미나 — 아시아·장소·연대 관련 이미지 1
KHU 전시기획 세미나 — 아시아·장소·연대, 더북소사이어티 회현점, 2026.08.02.
KHU 전시기획 세미나 — 아시아·장소·연대 관련 이미지 2
KHU 전시기획 세미나 — 아시아·장소·연대, 더북소사이어티 회현점, 2026.08.02.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