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기억, 영원한 상실
평화문화진지 ‘잃어버린 평화를 찾아서’ 리뷰
분쟁의 좌표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에게 당황스러운 순간, 모두에게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문화예술계의 대부분의 행사와 이벤트는 취소되거나 미루어 졌으며, 본 프로젝트와 같이 온라인 연구발표의 형태로 변경되고 있다. 수많은 프로젝트들은 경험과 체험을 목적하는 것에서 기록하는 것으로 선회 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급작스레 본 행사에 리뷰어로서 참여 의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인 ‘평화’는 나에게 매우 익숙한 동시에 생소한 단어다. 대한민국에서 평화는 통일을 염원하고 기원하는 의미로서 통용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스스로 상기하여 꺼내본 적은 거의 없다. 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날, 혹은 이산가족에 대한 이야기와 이미지를 뉴스에서 봤던 날에 이따금씩 올라오는 감정들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전쟁을 가장 근거리에서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영원한 상실감 만이 남겨졌을 것이다.
이번 리서치발표에서 소개된 토탈미술관의 전시 <현실비경>, 그리고 소개된 김현주작가의 빼뻘, 탈북화가 선무 작업들은 과거의 전쟁과 오늘날의 냉전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을 다양한 좌표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참상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아시아 젊은 작가들이 ‘냉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진행한 작업들, 한국전쟁 직후 미군의 기지촌으로 알려진 공간의 내밀한 현장성을 기록하는 두 작가의 작업, 이념의 대립이 낳은 탈북화가 선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모두 전쟁과 분쟁이 낳은 오늘날의 물리적 이념적 장소에 대한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이들 작업 중 가장 흥미로웠던 작업은 김현주, 조광희 작가의 ‘빼뻘’ 프로젝트이다. 김현주 작가가 패널로 참여하여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이유겠지만, 기록을 진행한 과정과 태도가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다가 왔다.
의정부의 위치한 작은 마을 빼뻘은 한국전쟁이후 만들어진 미군 기지촌이다. 현재 이 곳은 누구의 땅도 아닌 건물과 땅의 경계가 엇갈리는 곳이라고 한다. 1952년 미 2사단 포병여단 본부인 캠프스탠리가 들어서면서 1960년 이후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정착촌이다. 다양한 유래가 있지만, 배밭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하고, ‘뺑’이라는 식물이 일대에 가득하여 뺑밭으로 불리우다가 빼뻘이 되었다고도 한다. 김현주 작가는 여전히 빼뻘이라는 공간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그 곳을 기록 했던 과정과 장면들을 막힘없이 풀어놓았다.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오면 으레 하는 질문들, 그리고 자신들의 공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모습에 대한 의문, 작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곳에 스며 드는 노력을 통해 기록한 장면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책은 발표가 끝난 뒤 발표자, 패널, 리뷰어들의 사적 담소의 자리에서 자세히 살펴 볼 수 있었다.) 하얀 바탕 위에 놓인 두개의 쌍비읍, ‘ㅃ ㅃ’(책의 표지 디자인)을 보고 있자니 군인과 마을사람들이 수없이 교차하던 공간의 남겨진 오늘이 연상되었다. 젊은 세대는 그 곳을 떠나 거의 없다고 하지만, 문득, 여전히 남아 있을 여러 세대에 관한 이야기, 혹은 떠난 세대와 남겨진 세대간의 물리적 거리를 넘어서는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남기고 발표는 마무리 되었다. 프로젝트 빼뻘에서 주목할 점은 내지인들의 삶의 관여하거나 참여하지 않고, 그들이 놓인 현장 그대로를 담고, 담담하게 귀를 기울 이는 경청의 태도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놓인 과정들을 수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자만, 그보다 먼저 선행해야 하는 것은 잊혀지거나 잊혀질 수 있는 이름들을 나지막히 소환하는 일이 아닐까.
역사는 항상 과거의 중요한 기록들을 전달하는 목적이 있기에 큰 사건이나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을 가리킨다. 하지만, 누군가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참혹한 장면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이름들은 산과 들판에 묻히게 된다. 역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자들을 모두 기록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의 참혹한 사건이었다고 기록될 뿐이다. 전쟁은 영웅을 낳기도 하지만 수천, 수만의 이름들을 지워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잊혀진 이름과 잊혀질 이름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우거나 윗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의 풍경을 본 적이 있을까. 혹은, 경험한 적이 있었나. 평화는 어쩌면 수없이 진행되어 왔던 전쟁과 분쟁의 아픔을 애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의 시기가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세계 어느 곳에서는 이념과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테러와 전쟁이 계획되거나 진행중일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에서 송출되는 전쟁의 모습들을 목도한다. 하지만, 그것은 체험 될 수 없다. 전쟁 속에서 고통 받는 수 많은 개별자들의 모습은 포격의 먼지 속에 묻히고 만다. 기획자 조숙현의 발제에서 나온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평화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통상적으로 말하는 전쟁의 참상은 소극적 평화의 관점에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제시된 두 가지 관점,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에는 이념간의 충돌을 넘어, 폭력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내는 모든 사건과 사고로 전쟁의 범위와 의미를 확장하고자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우리가 평화를 목적하는 것은 전쟁 자체를 멈추기 위함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의도치 않게 희생되는 수많은 이들의 무고함 때문일 것이다. 무고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은 전쟁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 곳곳에 묻혀있다. 보편적으로 전쟁의 기록과 역사는 영웅을 중심으로 기록된다. 그들은 전쟁의 시작과 끝에서 매우 중요하고 숭고한 깃발을 꽂는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는, 기록될 수 없었던 수많은 이들이 있다. 인류는 남은 앞으로의 시간에서도 무고한 희생들은 지속적으로 낳게 될 것이다. 평화를 목적하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무고하게 잊혀진 이들을 기록하고 애도하는 것이 아닐까.
미디어라는 무기
전쟁과 평화에 대한 키워드 논 할 때, 개인적으로는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어버린 온라인 미디어다. 과거, 미디어는 특정 권력의 전유물이 되어 많은 이들을 통치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래 많은 것이 달라졌다. 디지털 민주화를 거론하는 시대가 되었고, 더 이상 정보의 생산 주체는 거대 조직이나 권력층 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개인들은 영상, 이미지, 텍스트로 나뉘어진 플랫폼을 활용하여 수많은 정보들을 쉽게 생산하고 전달 수 있게 되었다. 사회적 오류를 드러내거나 수면 아래에 있던 사건사고들을 들추어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짜뉴스, 정보조작,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이면도 함께 양산되고 있다. 또한, 미디어는 현대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활용된다. 9.11테러는 이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개인적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시절, 2001년 9월11일, 한국 시간으로 22시 무렵, 영화의 장면처럼 두개의 빌딩이 격추되는 장면을 보았다. 강대국의 상징 이었던 두 개의 마천루는 무기력하게 무너졌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테러조직은 자신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세계 곳곳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외쳤다. 이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공포와 충격을 안겼다. 테러의 대상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도 무고한 희생을 치를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오늘날의 미디어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공포를 퍼트린다.
우리에게는 수없이 많은 전쟁과 분쟁의 역사가 있다. 이것은 매우 다양한 몽타주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의 변주에 따라 교묘하게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 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에 침투하여 인류의 면역체계를 흔들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미디어라는 이름으로 어느 곳에서도 쉽게 만들어 질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수많은 이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영원한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전쟁 피해자에게,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미아가 되어버린 어느 난민에게, 의도치 않게 공개된 익명의 누군가에게, 어쩌면 우리들 자신에게 이미 격발 되었을 수도 있다. 내일의 전쟁과 분쟁을 막을 수는 없지만, 담담한 기록과 경청을 통해 대단한 이름과 사소한 이름을 구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고한 이름에게 최소한의 안식과 애도를 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의정부에 살았던 2년의 기억을 쫓아보면 그 곳에서 거주 이상의 무엇을 해본 기억은 거의 없다. ‘평화문화진지'라는 이름도 이번 연구발표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리뷰어로 참여하게 되어 글을 쓰는 지금, 그날의 발표를 다시 한번 상기 하면서 떠오른 생각은 전쟁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좌표 위에 개별자들이 더 이상 고립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개인은 언제나 폭력과 억압에 노출 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이 희생된 참혹한 현장은 하나의 사건으로 묶이기 쉽다. 하지만, 무자비한 폭력의 참상에 희생된 이들, 그리고 영원한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잊혀짐과 무관심이라는 폭력일 것이다. 그리 어렵지만도 않을법 하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경청하고, 오래토록 기억하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그날의 고통으로 인해 영원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누군가를 위해 우리는 기억해야하고 거론해야하고 기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