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o Park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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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 PREFACES

스스로 말하는 돌, 혹은그림

《스스로 말하는 돌 (혹은 그림)》 · 예술공간 의식주

1. 만질 수 있는 시간

한반도에는 약 4만 기의 고인돌 유적이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우리가 살아온 땅, 아주 가까운 거리에 과거로부터 전해온 시각 언어가 담긴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 초반에 자주 등장하는 기념비인 고인돌은 누군가를 애도하는 무덤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풍토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전언으로 작동된다. 올해부터 작가 현호는 이 무수히 많은 과거의 잔상을 소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국에 있는 고인돌 유적의 위치와 형태를 사전조사한 후 답사여행을 떠났다. 여러 장소에서 수집된 고인돌의 형태와 표면은 전시공간에서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로운 오브제로 기능하게 되었다. 전시공간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놓여있다. 그들은 안개보다 짙고, 밤보다 푸른 현(玄) 색에 덮여있다. 이 현이라고 하는 어둠, 검푸른 색은 관객에게 시각언어의 촉각화와 청각화를 체험하게 한다. 일순간 마주치고 스치는 기호언어와 다르게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바라보아야 경험할 수 있는 질감과 울림은 시간을 만질 수 있게 하고 장면을 들을 수 있게 한다.

2. 스스로 말하는

작가 현호는 무언가를 소환할 수 있는 방법과 소환될 수 있는 대상에 주목해 왔다. 그리고 이번 작업에서는 빛이 현저하게 줄어든 어둠의 시공간에 몰입하면서 우리에게서 멀어진 원시적 감각을 소환하게 한다. 이 공간은 우리의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간에 약간의 틈과 차이를 만들어낸다. 칠흑 같은 어둠도 결국 적응의 시간이 지난 후에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는 것처럼 작가에게 있어 검은색의 평면과 도포는 관객에게 던지는 시차의 터널이다. 관객은 전시공간에서 이 낯선 어둠과 마주해야 한다. 우리 등 뒤에 자리하고 있는 두려움과 닮은 이 검은 평면은 점차 멀어지고 있는 손과 손의 맞닿음, 입과 귀의 밀착을 다시금 연결하게 한다. 없어지고 삭제되는 무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새겨놓은 서사의 유전자가 자리하고 만들어지는 무한한 공간으로 전환하게 한다. 작가는 스스로 말하는 돌 자체를 발견하는 과정보다 잃어버린 감각과 봉인된 이야기가 담긴 무한한 공간을 복원하고 확장하는 일에 더욱 밀도를 가하고 있다. 가시광선에 보이는 이미지로는 담기지 않는 시각과 촉각, 시각과 청각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내어 너와 내가 닿을 수 있는 최적의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3. 소환사

작가는 이번 전시의 소재로 고인돌이라는 일종의 유적을 선택했다. 오브제가 유적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과거에서 흘러온 시간, 그리고 특정한 장소, 마지막으로 기록할 수 있는 가치,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 유적 중에서 고인돌은 가장 오래된 장소와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자연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셀 수 없이 오래된 어제의 이야기와 환경까지 자연스레 품고 있어 보존가치가 있는 유적이 될 수 있었다. 작가 현호는 이 고인돌이 지닌 언어에 주목한다. 베일에 싸인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를 넘어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과 시간이 모여 만든 서사의 껍질과 하나의 낱말로부터 비롯된 단단한 두께의 문장을 떠낸다. 이것은 일종의 ‘탁본 뜨기’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기록을 위한 탁본의 일반적인 의미와 역할이 아니라, 수만 광년 떨어진 별빛을 발굴하는 일과 같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발견할 수 있는 우리 본연의 감각을 떠내는 의미에서의 탁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기라는 재현 방식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 결과의 표면을 통해 닿을 수 없는 시간의 밀도에 질문해 온 작가 김현호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멈추고 응시하는 새로운 눈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마침내 우리는 이 눈을 통해 서술과 묘사가 잠식하고 있는 이 문명에서 은유와 감탄을 생산하는 해방의 유적과 만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