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동경의 자리
《두 개의 파도, 하나의 물결》 · 은평문화예술회관
1. 사물의 이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 커다란 풍경에서 작은 개체에 이르기까지 탄생에서 출발한 것들은 모두 한정된 시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유한한 땅에서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감각으로 수용되는 많은 것들에게 이름을 부여했다. 목적과 이유가 공중으로 흩어져 있던 세계에서 생명과 사물의 교차 지점을 찾아내고, 꼭꼭 숨어있는 삶과 죽음의 인과를 인지하게 되었다. 이름을 가진 대다수의 것들에는 일종의 약속이 부여된다. 이 결속의 언약은 결말과 완성을 향해 있기에 다른 가능성과 새로운 의미를 허용하지 못한다. 이름 지어진 사물은 오늘을 위해 연산 되고, 내일을 향해 연소되지만, 결국, 우리가 가진 고유의 표정, 얼굴은 이름에 가려져 점차 머나먼 시간의 저편으로 소멸되고 만다. 사라짐을 향해 달려가는 슬픈 시간의 울타리에서 우리는 간혹 사라지는 너를 위해, 사라질 나를 위해 오래된 사진첩에 담긴 지나간 것들을 소환한다. 이 되새김의 발걸음은 이미지가 아니라, 시각 외의 감각을 쫓아간다. 대상의 냄새, 촉감, 소리를 찾아 나선다. 문득 느껴지는 바다의 짠 내음, 손가락 사이를 훑고 지나는 차가운 바람, 한적한 공원의 풀벌레 소리처럼 시선 외의 감각이 느껴진다면, 깊은 그리움과 마주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수면 위로 서서히 올라오는 어떤 날이 상기될 때, 서둘러 도망가는 시간은 잠시 우리의 편이 된다. 그리고 이내, 고요하고 잔잔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그리워했던 누군가, 바라왔던 장면이 빛바랜 망막 앞으로 다가오게 된다.
2. 멈춰진 장면 사이로
인간의 시점에서 시간은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지나간 과거는 오늘의 관점에서 잊혀지고 사라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흐르는 개념으로 시간을 바라보지 않는 물리학의 가설이 있다. 위치 좌표와 같이 그 자리에 있는,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장면일 뿐이라는 가설이다. ‘초끈이론’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잘게 쪼개진 시간들이 서로의 인과를 형성할 뿐, 어떤 기준과 법칙으로 인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말한다. 시작과 끝, 끝과 시작 등 사라짐과 탄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과 오늘, 그리고 어제가 동등한 위치에서 인과를 형성한다고 이야기한다. 두 눈에서 벗어나, 시공간이 지배하는 넓은 환경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결국, 우리는 흩어져 있는 여러 시간대를 묶고 연결하는 존재인 것이다. 작가, 김꽃님이 열거한 화면이 그렇다. 나열된 프레임을 따라가다 보면, 전후 관계와 흐름이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그 자리 머물러 있는 하나하나의 장면으로 놓여있다. 정지되어 있고, 멈춰있다.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듯 정지된 틀에는 입으로 흘러나온 따듯한 온기와 붉은 귀로 흘러가는 차가운 공기가 보인다. 소리와 진동, 공간감, 냄새가 담겨 있지 않은 공허하고 납작한 프레임이지만, 꾸-욱 눌러쓴 일기장처럼, 녹음기에 또박또박 담긴 고운 육성처럼, 온전하게 담아낸 짧은 편지가 담겨있다. 수많은 미사여구와 수사보다 미완의 음절과 문장으로 마땅히, 온전히 전달해야 할 연민이 담겨있다. 특히, 이 짧은 프레임은 나란히 나열되는 장면들과 연결되어, 무엇을 강조하려는 듯 유사와 반복의 구조를 머금고 있다.
3. 교차 지점
영화의 한 장면, 만화의 한 컷처럼 작가 김꽃님이 수놓은 장면들은 모두 서정적이고, 스스로 읊조리는 독백을 담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에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해 진열하지 않고, 한 장씩 곱씹을 수 있도록 관객의 동선을 고려하여 천천히 나열해 놓았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장면들은 앞으로 흐르지 않는다. 첫 번째 동작이 다음의 동작을 연계하지 않는다. 하나의 장면은 올곧은 시간의 순서 안에서 서사되지 않는다. 뒤로 읽거나 앞으로 읽거나, 중간 지점에서부터 읽거나, 시작점을 어디에 두어도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입구와 출구의 구분이 없는 열린 이야기 구성으로 관객과의 밀고 당기는 대화의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최소한의 장면, 잎이 떨어지거나, 두 손이 만나거나, 두 개의 수평선이 만나 하나의 파동을 일으키는 그의 화면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시간은 앞에서 뒤로 흐르는 개념, 생성과 소멸의 구조로 인지 되지 않는다. 위도와 경도, 수직과 수평의 교차점에서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소속되어 어떤 기억이 되길 바라고, 어떤 멈춤을 기다리는 좌표적 시간으로 고정되어 있다.
4. 연민과 동경의 자리
야속하게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현장은 우발적인 사고와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의 현장으로 수많은 개인들을 몰아넣는다. 이 무기력한 공간에서 우리는 매일 자의적이지 않게, 피동적으로 이별과 마주하게 된다. 이 수동적 사라짐은 다가올 내일에 대한 기대 속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다. 작가 김꽃님은 사라짐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시간 속에서 지속하거나 영원을 확보하기 위해 무언가를 그려내고 남겨내는 것이 아니다. 두 눈에 깃든 어떤 날의 사각지대, 어제의 잃어버린 좌표를 찾아내어 뿔뿔이 흩어진 시간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업한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각자의 역할과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름을 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다. 단지, 주어진 각자의 시간, 스스로 만들어낸 사건의 현장에서 두 사람, 두 관계, 두 가지 연민과 동경이 있었음을 담담한 목소리로 담아낸다. 그가 수놓은 이야기 안에서는 시간이 시간을 위로하고 장면이 장면을 지탱한다. 의자가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네 개의 다리와 하나의 좌판, 그리고 든든한 등받이로 구성되어 있듯이, 그가 나열한 장면은 무한히 펼쳐지는 외로운 오늘을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진 단단하고 견고한 시간의 기둥이자 지지대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등은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고 있는 동시에, 의자가 지닌 사물의 역할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그려낸 담백하고 담담한 서사는 연민과 동경이 맞닿는, 시간과 시간이 기대고 이해하는 연민의 공간이다. 작가는 지나간 어떤 날을 잠시 멈추어 이야기한다. 사라지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은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결국, 오늘을 통과하여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고, 함께하고 동경하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