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젖은 나무, 바람에 증발되는 눈물
《예술곶04_지속의 순간》 · 예술곶산양
1. 소환과 염원의 시간
생존을 위해 내일을 바라보고 예측하는 일, 어떠한 위험과 위협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염원하는 일, 우리는 과거에서 전이되어 온 수많은 체험의 역사를 통해 내일의 안위를 갈망해 왔다. 인간을 포함한 범생명은 전이와 유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자를 통한 전이, 전 세대와 후세대를 통과하는 체험의 전이가 가능한 종은 지구상에서 인간이 유일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문명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건설해 왔다. 부여된 각자의 이름 석 자에는 나의 유전자, 나의 기원을 새긴 성(family name)이 유지되고 있다. 죽음이라는 한정된 시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의 내가 경험한 시간의 기록을 다음 시간을 살아갈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 집단의 기억과 사건을 충실히 새긴다. 더불어, 우리는 떠나간 이들을 애도하고 소환하여 시간을 거스르는 전이를 시도하기도 한다. 희미해지고 사라진 이름을 다시 재창하여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의 시간을 달랜다. 음식을 준비하고 예를 차리며, 마주하지 못한 이들의 이름 앞에 두 손을 모은다.
2. 섬,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
여기, 하나의 섬이 있다. 이곳은 신성한 땅이자, 염원의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 쉬이 떠날 수 없는 곳, 생존을 위해 맞서야 하는 깊고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이곳은 많은 이들의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좌표다. 배를 타고 떠나간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는 섬, 무사 귀환과 만선을 기원하는 섬, 외로운 이들을 달래는 섬이다. 이곳에서 어둠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난폭하고 거대한 재해, 폭력적이고 끔찍한 사건, 예상치 못한 사고가 저장되는 공간이며, 머나먼 수평선 끝으로 슬픔의 서사가 휘발되는 공간이다. 작가 김제원은 제주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갯것 할망당’을 작업의 장소로 특정했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진입의 통로가 열리고 닫히는 곳이다. 해녀와 어부들이 물질 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로 바닷가에 위치한 해신당이다. 첫인상은 신당이라기보다,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기원의 기념비, 소박하고 간결한 제의적 장소로 인지된다. 제주의 여느 집에서 발견되는 현무암의 돌담처럼 외벽이 존재하며, 내부에는 간단한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제단이 자리 잡고 있다. 돌아오는 배의 길잡이로써, 또는, 멀리 떠난 이들을 배웅하는 역할로 통용되는 등대와 유사한 장소성을 지니고 있다. 이 ‘섬 안의 섬’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응어리와 한을 제물 삼아 안전과 풍요를 기원해 왔다.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공동체의 기억이 머무는 곳으로 시선을 둔다. 기존의 작업에서 그는 공동체의 사건 안에서 가려진 개인의 이름과 기억을 솟아나게 했다. 그런 연유로김제원의 작업은 오브제, 건축, 기념비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땅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고, 땅을 기점 삼아 일으킨 일정한 축이 균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 그가 특정한 장소에는 바람을 허용하고 땅 위의 하늘을 유영하는 유연한 종이가 흩날린다. 공동체와 집단에 가려진 이름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각자의 이름이 모여서 만들어진 공동의 비애가 머무는 장소와 시간에 주목한다. 이곳에서 그는 사적 시간이 뭉쳐서 만들어내는 공공의 염원을 소환한다.
3. 기메, 신이 강림하는 자리
‘갯것 할망당’, 바다 위에 특정된 이 신당에는 작가가 설치한 구멍 뚫린 종이가 나부낀다. 이 조형물의 원형은 무속신앙에서 주로 사용되는 ‘기메’다. 기하학적으로 재단된 여러 가지 도형은 일정한 패턴과 구조 속에서 반복되어 기원의 문양을 만들어낸다. 제장에 설치하거나 의례에 직접 쓰기 위하여 창호지나 백지, 천 등으로 만든 신의 형상이 담겨있다. 기메의 어원은 분명히 알기 어렵지만, 첫음절 ‘기’는 깃발의 의미, 둘째 음절 ‘메’는 모양을 뜻하는 의미로 흔히 통용되고 있다. 쓰임새는 다양하다. 신체의 형상을 지니거나 착용할 수 있는 것도 기메에 속하지만, 신이 강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깃발, 꽃, 벽 등의 구조물에도 활용된다. 김제원의 기메는 신을 영접하거나, 풍요를 기원하는 용도의 기메가 아니다. 이 얇은 종이의 하단에는 물에 녹은 듯한 흑백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신이 기거하는 무릉도원이나 신비로운 풍요의 땅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민간신앙에서 그리는 신의 공간이 담기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섬사람들의 터전인 땅의 껍질을 찍어내고, 바다의 물결을 흡수하듯, 지금 그들이 밟고 있는 땅 자체의 모습과 질감을 담아내고 있다. 꼿꼿하게 솟아있는 대나무 기둥에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모양이 드러날 수 있는 길이 구현된다. 이곳은 세찬 바람을 달래는 길이자 거친 파도를 포용하는 회한의 통로다. 그런 면에서 김제원의 작업 매체는 대나무와 종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섬의 환경, 땅과 바다와 바람과 빛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섬이 담고 있는 애환의 기억을 담기 위해, 그들이 품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서사를 담아내기 위해 염원의 현장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까지 끌어안은 것이다. 수많은 시간 선에 있는 섬의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야기의 탑은 작가 김제원의 기메를 통해 많은 이들의 고락을 뭉치게 하고 교차하게 한다. 이는 공동체가 지닌 온전한 눈물의 구현이다.
4. 눈물의 기원
어떤 곳이든 우리 인류가 밟아 왔던 곳, 터전에는 희생과 폭력의 역사가 새겨져 왔다. 작은 이야기에서부터 거대한 서사가 담긴 사건들은 언제나 크고 작음을 구분하지 않고 한 사람의 깊은 구석까지 침범한다. 이러한 사건, 이야기, 서사는 시간이 흐른 뒤 일종의 사물이 된다. 변할 수 없고 가능성을 잃어버린 경직된 기록으로써의 사물이 된다. 한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침투하여 해결되지 않고 풀리지 않는 응어리로 존재한다.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듯, 버거운 밀도로 밖에서 안으로 타격 된다. 김제원이 작업의 장소로 설정한 이 신당에는 검은 돌이 투박하게 배열되어 든든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바다가 저민 둥글지만, 거친 돌멩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이는 한 사람의 염원이며, 사건이 사연으로 휘발되어 쌓아 올린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이다. 바람과 파도, 외부의 힘과 압력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섬 안의 섬, 이곳은 바람에 맞서지 않고 길을 내어주는 장소이며, 슬픔과 회한을 끌어안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섬이다. 김제원은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갯것 할망당’에 자신의 기메를 세웠다. 연약한 종이로 만들어진, 섬의 이미지를 흡수하는 이 깃발은 쓰러지기 직전까지 대나무와 함께 갯벌 위를 나부낀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끝끝내 버티려고 하는 인간의 연약함이 그 살갗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 공간에서 내일과 미래를 기원하지 않는다. 열린 과거로 가는 길, 어제를 열게는 문으로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다. 결국, 김제원의 작업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장소는 많은 이들을 기댈 수 있게 하고 염원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응어리, 한으로 대변되는 그 무엇의 가장 최초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하나를 위한 기념사가 아니다.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셋이 되는, 집단과 모두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지어지는 함축된 서사의 기원, 눈물의 원형이다. 어제에서 오늘, 그리고 내일을 가로지를 수 있는 수많은 눈물이 모여 드넓은 바다로, 바람으로 휘발되는 회한의 장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