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 잔상, 환상
《발을 딛으면, 헤매이는 사각지대》 · 별관
1 현상과 눈
눈에 비치는 현상계의 이미지는 동일하지 않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객관적 실체라기 보다, 각자의 삶 속에서 축적된 경험, 정서, 기억, 그리고 현재 놓인 위치에 따라 굴절된 하나의 이미지로 맺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포착하는 세계는 같지 않다. 누군가는 더 멀리 볼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더 미세한 것에 주목한다. 어떤 이는 시력을 보정하기 위해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하고, 또 다른 이는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색안경을 쓴다. 우리의 감각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에, 눈에 맺히는 세계는 늘 다르게 인지된다. 이처럼 시각이라는 인식의 통로는 언제나 한정적이며, 감각 체계는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된다. 정지해 있는 땅 위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몸이 교차하며 발생되는 멀미처럼,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사람은 각기 다른 적응 속도와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금세 익숙해지고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방향을 잃은 채 무중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감각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창이 아니라, 언제나 개인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의해 필터링된다.
자연계의 현상은 애초에 특정한 대상을 향해있거나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채 무작위로 발생하고, 의도 없이 모든 존재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생명은 이 동일한 조건 속에서도 그 작용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인다. 특히 인간은 고유한 문화적 배경, 복잡한 정서 구조, 시간의 누적된 기억이 결합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해석하며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와의 불협화음 속에서 갈등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노출되며, 예고 없는 상실과 이별을 맞이하기도 한다. 감각의 충돌과 인식의 차이는 결국 인간 존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동시에 세계에 대한 이해도 다면적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사용하는 '두 눈'은 매우 연약한 도구가 되었다. 의도와 목적인 담긴 이미지에 노출되어 무수하게 양산되는 오류와 거짓을 걸러내지 못한다. 우리의 시야는 언뜻 분명해 보이지만, 실상은 수많은 믿음과 욕망, 환상과 기대가 뒤섞인 이미지들의 흐름 속에 잠겨 있다. 이곳은 망상과 허망의 믿음이 복제되고 증폭되는 환각의 장(場)이며, 우리의 눈은 이곳에 스스로를 봉인하고 있다.
2 잔상과 피부
빠르게 휘몰아치는 건조하고 먹먹한 선,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형형색색의 모양들 너머로 흐릿한 풍경의 잔상이 스쳐 지나간다. 사람, 나무, 들풀로 이어진 길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들이 점차 멀어진다. 익숙한 일상의 장면들 위로 다시금, 경쾌하고 날카로우며 동시에 묵직하고 텁텁한 선의 집합이 솟구쳐 오르며 휘날린다. 이번 전시에서 김소정 작가의 작업은 전통 사물놀이에서의 ‘흥’이나 누군가의 염원을 담아 펼쳐지는 굿판의 신명처럼 몰입과 쾌감의 정점에서 분출되는 강렬한 감각을 발산한다. 캔버스라는 한정된 면적은 실제 공간에 비해 작지만, 김소정의 손끝에서 날아오른 선은 마치 무한한 들판 위에서 펼쳐지는 춤사위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며, 눈에 보이지 않는 명징한 소리를 품어낸다. 이 선들은 보는 이의 시야를 강하게 타격하고 율동하며, 파동을 일으킨다. 그로 인해 익숙하고 당연했던 장면들은 일시적으로 시야에서 멀어진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연작을 들여다보면, 흐릿하게 번져가는 장면 속에서도 인공물과 자연물이 교차하는 구조적인 지점들이 분명하게 포착된다. 다리 밑, 침대, 도로처럼 자연과 인공이 맞닿는 경계에서 작가의 풍경은 서서히 자라난다. 그러나 이곳은 그에게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되는 불안정한 장소이기도 하다. 하천이 범람하거나, 침실이 물에 잠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가장 안전하고 안락해야 할 공간이 무너지는 내면의 균열을 드러낸다. 작가는 단단한 바닥이 물처럼 넘실거리고, 세차게 흔들리는 불안한 진동이 퍼지는 그파동과 균열의 공간을 자신의 신체와 감각이 거닐 수 있는 무대로 전환한다. 목탄이 부딪히는 소리, 가속되는 손놀림,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은 불안과 흔들림을 잠재우며 다시금 그의 손짓과 동선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아득히 멀어지는 풍경들은 아쉬움과 회한을 훌훌 털어낸 채, 그의 피부로 대변되는 새하얀 캔버스 위에 푸른 잔상을 조용히 새겨 놓는다.
3 환상과 신명
김소정은 지나간 전시 <일렁이는 수조 _ 2023년>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대변되는 말간 액체의 촉감을 바라보며 정서 안에 깃든 깊은 동굴로 입장하는 관찰자의 시점을 그려냈다. 그러나 이번 전시 <발을 딛으면, 헤매이는 사각지대>에서는 자신이 통과해 온 일인칭의 체험을 하나의 '공동 감각 지대'로 환원한다. 이곳은 입구와 출구의 방향이 구분되지 않는다. 닫히지 않는 광장처럼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의 손끝에서 풀려나온 이 신명의 파장은 하나의 언어가 되기를 거부한 채, 관객의 몸과 마주하며 잔상과 진동으로 교차된다. 그것은 어떤 이미지도 완결되지 않은 채 떠돌게 만드는, 현상과 감각 사이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다. 이 공간에서 신체는 더 이상 대상화된 감각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되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시간이다. 이 신체의 몰입 통로를 통과하는 관객은 시간의 직선에서 이탈한다. 오늘의 사건은 점차 기억으로 희석되고 감정의 소용돌이는서서히 퇴적된다. 이윽고, 어제의 기억들은 밤의 안식과 아침의 온전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변환되어 우리 신체에 숨겨진 몰입의 장소를 상기하게 한다.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세계관을 능동과 허용의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그의 작업은 오늘도 신체가 지닌 감각의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목표와 성과를 위한 선택이 아닌, 너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의 신명과 진동을 위한 노동을 기꺼이 수행한다. 작가 김소정의 손에서 출발한 춤사위는 각기 다른 몸 위에서 상이한 잔상을 남기지만, 결국 동일한 리듬으로 공명한다. 내일에 기대지 않고 어제에 갇히지 않으며,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깊이로 불러내는 일. 김소정의 작업은 그러한 울림을 향한 끊임없는 호출이자, 신체와 감각과 감정이 만들어낸 환상과 미지의 파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