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의 균열
《FOLLOW THE CRACK》 · 온에어갤러리
1 주름
시간은 언제나 몸 언저리에서부터 균열을 만들어낸다. 가죽과 피부에 새겨진 주름은 단지 노화의 흔적만이 아니다. 그것은 한 생이 통과해 온 밀도이자, 수분을 잃어가며 생성되는 생물학적 지층이며,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의 이력서이다. 늙음이라는 상태는 수분이 줄어드는 일종의 생물학적 현상이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생애 내내 수분을 흡수하고 저장하며 외부와 연결되지만, 늙음은 그 수용체가 건조해지는 과정이다. 이 물리적 마름은 땅의 갈라짐, 피부에 새겨진 주름, 오래된 사물의 표면에 나타나는 크랙(crack)이다. 작가 이영희는 그 갈라짐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고, 확대한다. 이 균열은 내면과 외면, 주체와 객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포개는 진자운동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단지 쇠퇴의 흔적이 아닌, 기억과 경험이 축적된 시간의 주름이다. 저장할 수 있는 수분의 양이 줄어들며 건조해지는, 곧 균열과 갈라짐이생겨나는 땅의 갈라짐과 유사한 생명의 주름, 오래된 사물의 표면에 나타나는 크랙(crack)은 작가의 시선 안에서 하나의 질감으로 통합된다. 그리고 이 질감은 더 이상 정지된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사진조각과 파편들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공간 이곳저곳에 투사되어 현실과 비현실, 평면과 입체, 이미지와 기억의 경계를 흔들리게 한다.
2 흔들리는 시간
곱게 펴진 솜뭉치 위로 순간의 파편이 새겨진 흔들린 사진들이 덮혀있다. 그 위로 재봉질된 선들은 올록볼록한 볼륨을 드러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시간의 파형들이 화면을 덮는다. 작가는 부드럽고 정갈한 땅을 다지고 지나간 시간을 복원하여 다시금 흘러가는 시간에서 부유하는 자신의 초상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일명 실패한 사진, 카메라의 손떨림과 흔들림을 수용하여 나온 결과물은 이번 전시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설치된 이미지 중 일부는 전시 공간 주변의 틈새를 촬영한 장소 특정적 작업이다. 그러나 이곳은 작가의 흔들리는 손을 통해 폐기된 미지의 통로 변환된다. 작가는 이 불완전한 세계의 틈새로 더욱 진입하여 오랫동안 감춰왔던 피부와 껍질 아래의 수많은 흔들림을 소환한다. 기울어진 수평, 흔들리는 화면, 분열되는 구성의 연출은 오차와 균열을 재현하며 ‘완전한 것’에 대한 신화를 거부한다.
작가 이영희는 자신의 작업에서 균열을 메우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펼쳐 보이며 스스로의 주름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사진과 드로잉, 그리고 종이, 천, 빛(영상)의 질감을 병치하여 잠시 잊고 있었던, 혹은 저 멀리 사라졌던 오래된 밀도의 감각을 불러낸다. 그린 면을 뒤집어 보여주는 배체 기법의 활용을 통해 지나간 것을 기억하고, 사라질지도 모를 지금의 시간을 위해 슬며시 자신의 손짓을 스미게 한다. 깨끗하게 빨아내거나 먼지를 털어내기보다, 오염과 흔적을 강조하여 매끈하지 않지만, 오래된 겨울을 간직한 솜이불의 질감을 발산하게 한다. 이 흔들리는 피부는 빛에 의해 변화되고, 다시 어둠으로 사라진다. 그의 화면은 오랜 세월 동안 빛에 노출된 인간의 껍질 속에서 끝끝내 밝히지 못한, 혹은, 뒤로 숨어버린 사라짐과 언제나 빛의 뒤안길에 자리하고 있는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얇은 장막들은 어딘지 모르게 포근하고 온화한 촉감을 발산한다. 통증과 고통은 반전되고, 상실은 또 다른 피부로 덧입혀진다. 불완전한 것, 미완의 것, 그러나 더욱 깊은 밀도로 존재하는 것. 그것은 긴 시간 봉인되어왔던 불안의 공간들이 엮어낸 연대기이다. 이곳에서 멈춰졌던 시간은 다시금 앞으로 흐른다. 평면과 입체의 경계는 흐려지고, 가상과 현실, 실재와 상상을 넘나드는 새로운 피부가 만들어진다. 더 이상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균열되고 흔들리는 표면을 다시금 허용한다. 빛과 이미지가 흘러가며 만들어내는 ‘이중의 피부’는 우리가 놓쳐온 감각들을 다시 상기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감각과 삶의 주름을 다시 들여다보된다. 작가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두터운 시간을 꿰매고 있다.
3 증명
작품의 매체로 사용되는 솜, 장지와 광목천, 그리고 사진은 모두 시간의 층위와 밀접한 미디어다. 작가는 기억 회상의 작동 방식을 따르면서 조각난 필름을 붙여 나가듯 공간 재구성한다. 장면을 다루되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이면의 풍경과 부유하는 것들의 잔해들을 겹친다. 파편적인 언어들, 흔들리는 이미지를 서로 엮어내어 아직 사라지지 못하는 것들을 응시한다. 근육과 피부의 이음처럼 화면을 따라 흐르고 흔들리는 화면은 시선의 불안을 기저에 두고 있지만, 거울과 같이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고 있기에 연민의 자세를 다지게 한다. 이는 단지 타자와 외부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내부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수용과 허용의 시선이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새겨진 균열을 통해 타자, 즉 너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층위를 넘나들며 증명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공간은 장면들을 서로 쌓아 만들어낸 일종의 레이어가 가지는 물리적인 구조에 있지 않다. 연결된 그물망, 기억의 틈, 존재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전이된 피부이며,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자 초상이다. 작가는 그려질 수 없는 것, 흩어진 것, 사라져가는 것들의 편에 서 있다. 주름진 삶의 시간, 건조한 사물의 감각,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에 대한 작가 이영희의 연민은 단지 회상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우리 모두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균열과 부유하는 것들, 이내 사라지지 못한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다독임이다.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을 만질 수 있다. 하지만 손에 잡혔던 것들은 이내 하나둘씩 사라지고 만다. 몸 또한 시간의 흐름에서 너무나 연약한 파편에 불과하다. 이영희의 작업이 증명하듯, 갈라진 틈과 주름진 표면 위에는 살아온 날들의 표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래된 옷자락이 바람을 품고, 빛바랜 사진이 여전히 어떤 온도를 간직하듯, 균열은 사라짐이 아닌 존재의 또 다른 방식으로 남는다. 그것을 만질 수 없다 해도, 느낄 수 있고, 흘러가는 시간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작가는 그 어렴풋한 울림에 시간의 바늘을 꽂아 꿰맨다. 한 땀 한 땀 지나온 시간에 감각을 더하고, 사라질 운명이던 기억에 형체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질문하게 된다. 무엇을 잃어왔으며, 무엇을 아직 붙잡고 있는지. 그리고 잔상 안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는 무언가, 주름진 삶의 피부 아래로 흐르고 있는 말들, 접힌 채로 남겨진 시간의 조각들, 그것들은 이윽고 다시 떠오른다. 사라지는 법을 유예한 채, 우리 앞에 다시 고요히, 그러나 분명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