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흔들리는 순간》 · 두나무아트큐브
1 밤과 낮
머무는 곳보다 먼 곳으로 이동할 때, 혹은 타국으로 여행을 갈 때, 우리는 시간의 차이를 마주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몸은 낮과 밤의 어긋남으로 익숙한 리듬을 잠시 잃게 된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서서히 그 낯선 리듬에 적응한다. 이곳의 분주한 낮은 저곳의 고요한 밤이 되고, 저곳의 따뜻한 햇살은 이곳의 차가운 습도와 공기로 변환된다. 같은 순간에도 시간은 언제나 다른 표면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 차이는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간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 이영희는 바로 이 간극, 시간의 편차에서 비롯되는 어긋남과 교차의 지점을 탐색한다. 그는 전시 공간을 하나의 ‘좌표’로 설정해,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제작된 작업을 오늘의 시점으로 당겨놓았다. 그림자와 빛이 엇갈리고, 바람과 온기가 교차하며, 기억과 현실, 그리고 꿈이 뒤엉키는 장소로 전환했다. 이는 단순히 어제와 오늘의 시차를 재현하거나, 존재를 기념하려는 기록의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위치와 속도의 편차, 인식과 인지의 미세한 오차로부터 발생하는 진동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가 구축한 ‘이곳’의 시차는 현실과 기억, 경험과 이미지 사이에서 발현되며, 서로 다른 시간의 표면들이 중첩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여기를 완전히 포착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가 이영희가 구현한 그 미묘한 흔들림 속에서 이곳은 비로소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유기체로 드러난다.
2 흔들림, 그리고 박동
이번 전시는 작가의 지나간 궤적, 1995년과 1997년에 제작된 작업 〈crack〉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의 작업은 낙엽, 흙, 낡은 천과 같은 비정형적 재료들을 바느질로 엮으며, ‘대지의 질감’과 ‘신체의 표면’을 중첩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회화적 이미지에서 확장하여 물질적 행위로써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작가는 바늘을 통해 천의 표면을 찌르고 봉합하면서, 세계의 상처와 자신의 내면을 동시에 꿰매고 있었다. 그 수공예적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 삶의 호흡이었고, 시간의 궤적을 기록하는 몸의 흔적이었다. 이 오래된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장막의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 낡은 천은 단순히 가림막이 아니라, 빛과 영상이 투사되는 살아 있는 표면이 되었다. 1990년대 작업에서 쓰였던 낙엽과 흙은 전시 공간 주변의 낙엽과 흙으로 대체되고, 이것들을 덧댄 천 위로 새로 작업한 영상들이 곳곳에 투사된다. 작업 〈251-Ellipsis〉(2016)는 말의 파편과 빛의 흔적이 흘러가는 긴 호흡의 영상이고, 〈흔들리는 순간〉(2025)은 사천왕상의 클로즈업 이미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홍천 수타사에서 촬영한 사천왕상 일부를 흔들린 채로 포획했다. 영상 속 사천왕의 초상은 초점이 맞지 않은 채로 진동하며, 단단한 신체의 표면이 마치 살아 있는 살결처럼 미세하게 분열하고 흔들린다. 이제 이영희의 공간 속에서 신앙의 상징(사천왕상)은 고정의 속박에서 풀려나 시간을 통과하는 보편적 물질의 표면을 드러낸다.
이 장소에서는 건조한 표면으로 엮어낸 천의 질감과 진동하고 분열하는 불안의 표상 떠오른다. 그리고 빛의 반사면이 서로 엮이며 거대한 파동을 발산한다. 작가는 과거의 파편 위에 오늘의 영상을 덧입히며, 물질과 시간의 경계를 다시 꿰매고 있다. 표면에 남은 바느질 자국은 영상 속 진동과 이어지고, 조명은 틈새를 따라 숨결로써 이곳과 저곳을 드나든다. 낡은 천, 흔들리는 화면, 내비치는 빛, 이 모든 요소가 겹칠 때, 관객은 정지된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흔들림과 마주한다. 이영희에게 이 흔들림은 불안의 징후가 아니다.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박동이다. 그것은 시간과 물질, 이미지와 신체가 함께 떨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3 항상성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장막과 영상은 ‘균형의 운동’을 시각화하고 있다. 낙엽과 흙, 천의 표면에서 시작된 물질적 시간은 빛의 파동과 영상의 진동으로 변환되며, 하나의 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과거의 물질이 현재의 빛으로, 빛이 다시 현실의 표면으로 환원되는 순환 속에서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앞과 뒤의 구분이 없는 지속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에게 시간은 과거와 현재로 분절되지 않고, 한 호흡 속에서 이어지는 흐름이다. 그러므로 전시 〈흔들리는 순간〉의 시간은 흐르지 않으면서도 변하고, 멈춰 있으면서도 진동한다. 전시장이라는 유기체 속에서 작가는 그 진동을 재봉질하듯 다시 엮어내며, 자신과 세계의 경계를 재구성한다. 결국 작가 이영희는 완전한 안정이 아니라, 불안정 속의 항상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흔들림을 제거하기보다 받아들이고, 균열을 봉합하기보다 그 틈으로 스며드는 빛을 포획한다. 그의 손끝에서 시간은 직선적 흐름이 아닌 순환하는 호흡으로 전환되고, 세계는 단단한 질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 있는 유기체로 다시 구현되고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 ‘틈’과 ‘균열’의 세계관을 응시해 왔다. 그에게 세계는 언제나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사이의 공간에서 작가의 눈은 새로운 리듬과 움직임이 포착했다. 바늘을 들어 천을 뚫고, 낙엽을 봉제하며, 신체의 이미지를 흔들리게 만드는 모든 행위는 단 하나의 사실을 증명한다. 세계는 여전히 살아 있고,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가장 보편적이지만 중요한 사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울림을자각하는 것. 시차와 오차의 세계를 견디는 일은 어쩌면 그 불완전한 진동과 동거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흔들림은 불안을 낳지만, 동시에 생을 지속하게 한다. 그것은 무너짐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탄성이자, 균열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미세한 박동이 된다. 이영희의 작업은 그 불안과 균열의 자리를 예술의 감각으로 전환하며, 우리가 사는 세계의 불완전한 리듬을 조용히 수용하고 있다. 오늘도 작가의 손끝은 시간과 장소를 통과하며 피부에 깃든 역사를 꿰매고 다시 풀어내며, 자신이 위치한 시공간의 좌표를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