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과 어제를 항해하는 편지
영천레지던시
1 검은 구름
먼지, 석탄, 먹구름, 블랙홀, 밤, 동굴의 검은색은 빛의 부재를 가리키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응축된 은유로 사용되곤 한다. 여기서 검은색으로 대변되는 어둠은 비가시의 상태가 아니라 잠복(潛伏)의 상태이며, 스스로 빛을 머금고 있는 함축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작가 이향희의 시선은 이러한 검은 어둠이 깔린 장소와 시간처럼 움직임이 멈춘 사물, 혹은 표면 아래 가라앉아 서서히 굳어지는 그늘진 상태와 현상에 오랫동안 머문다. 이 응시는 어둠 속 사라짐에 순응하는 무기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검은 구름 뒤에서 다가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대응하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 일종의 기다림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어둠은 소멸의 징후가 아니라 도래(到來)의 장소가 된다. 작가는 그곳에 선을 긋고 면을 나누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형체들의 경계와 주름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렇기에 작가에게 검은색은 부정의 끝이 아니라 출현의 시작점으로 기능한다.
야간의 사진 촬영을 떠올려 보자. 어두운 환경에서 카메라의 플래시는 찰나의 번쩍임으로 배경을 후퇴시키고 근경의 사물을 날카롭게 분리한다. 빛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야간 촬영에서 어둠은 불필요한 정보를 지우면서 사물의 골격과 질감을 부각한다. 이향희의 화면에서 검은색은 바로 그런 ‘선별의 장’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퇴각한 것들, 후퇴한 것들을 위해 그늘진 시공간에서, 빛에 멀어진 것들의 윤곽과 형태를 어루만지며, 잃어버렸던 이야기의 파도를 다시 일렁이게 한다.
2 떠오르고, 새겨지는
작가 이향희의 회화에서 기억은 수면 아래 잠긴 채로 머물지 않는다. 뚜렷하지 않은 장면들 위로 과거의 어느 날을 길어 올릴 수 있는 ‘한 줄의 빛(작가의 그리는 손)’이 새겨지며, 잃어버렸던 과거의 시간은 손에 의해 그리고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오래된 기억 속 파편들을 뜰채로 건져 올리듯 수집(收集)한다. 일상이라 부르기엔 넓고, 사소하다고 치부하기엔 너무 가까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야기’들이 화면의 표면과 후면을 오가며 자리를 잡는다. 서로 다른 일인칭의 목소리—누군가의 ‘별 하나’, 또 다른 누군가의 ‘눈동자 하나’—가 병치되고 얽히는 장면들은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동선을 안내한다. 화면에 드러나는 명확하지 않은 정보와 단서들 덕분에 보는 이는 화면을 더듬어가며 주관적인 해석을 덧씌게된다. 해석을 강요하지 않아도 눈과 시선 위에 닿는 질감들은 이해를 멀어지게 하고 잠시 잊고 있었던, 흐릿한 장면들을 투사하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와 관객은 서로의 이야기를 중첩하는 적극적인 협업자가 되어 해석이 아닌, 이해의 공간에서 마주하게된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거대한 나무 이미지는 물리적인 차원의 자연물이 아니다. 나무의 형세는 작은 정방형의 화면들을 가로지르며 특유의 꿈틀거리는 동세와 힘을 보여준다. 여타의 나무들과는 다른, 영험하고 풍성한 에너지는 신성함과 숭고함을 발산한다. 원시성을 간직한 나무의 표면 위로 작가의 눈으로 새긴 기억과 손으로 새긴 문장의 이파리들로 덮여 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여러 가지 기억과 기록의 이미지들이 굵은 줄기 사이를 표류한다. 당신과 나의 시간, 혹은, 당신이 지나온 시간의 이모저모, 어제는 그냥 지나쳤을 그의 기억들이 외롭게 빛나는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이렇게 작가 이향희가 수놓은 단편적 이미지들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장면들이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유년의 기억,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이와의 아련한 기록들이 자연스레 얹혀 있다. 시간의 축을 가늠하게 하는 시간의 줄기가 흐르고, 누군가의 염원을 담아내는 기원으로 쓴 편지가 새겨져 있다. 나열된 기억과 기록의 이미지들, 작가가 투사한 소박한 장면은 이 나무의 피부 위에 내려앉아 보는 이들을 지긋이 바라본다. 더불어 한없이 너그러운 누군가의 품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향희가 펼쳐낸 나무는 자연과 풍경의 요소가 아니라, 자신에게 새겨진 경험을 오랫동안 보존하여 닿을 수 없는 시간에 전달하는 일종의 전언의 장소가 된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기억을 회상하는 과거형이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에 더 가깝다.
3 항해하는 편지
이향희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지점은 구축과 설계의 과정이다. 틀과 축을 새워 외부와 내부를 나누고,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건축적인 요소와 행위는 전시장, 작품 설치의 과정에 투사되곤 한다. 이러한 건축적 과정과 구조는 그의 작업에서 관객의 동작과 시선을 유도하는 동선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활용된다. 이때 화면은 더 이상 프레임 안에 갇힌 자족적 평면이 아니다. 화면 바깥의 구조—기둥, 프레임, 면, 간격—가 다시 화면 안의 질서를 규정하고, 반대로 화면의 리듬이 공간에 내재한 보행 속도를 다시 설정하게 한다. 작가에게 전시장은 ‘풍경으로서의 그림’을 나열하는 장소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광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조형적 효과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는 이들 각자의 기억이 접속할 수 있는 매개를 위한 광장이다. 관객은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작가가 제시한 단서 위에 자신의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이곳에서 관객은 과거 완료형의 경험을 회상하지 않는다. 완결된 이야기가 아닌 진행형에 가까운 각자의 이야기, 서로 다른 단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직 내려오지 않은 장막의 앞, 어둠의 바깥과 안쪽이 서로의 윤곽을 잠시 빌려 쓰는 사이, 도래하지 않은 미지의 형상이 관객과 작품 사이를 부유한다. 이향희의 그림은 그 준비의 시간을 항해한다.
이향희의 회화는 화면 안에 머물지 않는다. 도래할 시간을 향해 발신되는 편지이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세계를 준비하는 항해의 흔적으로 전시장에 놓인다. 검은 화면은 사라짐이 아니라 시작의 공간으로, 그리는 손은 기억을 불러내는 빛의 매개로, 전시장은 타인의 이야기가 접속하는 광장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이향희 작가가 작품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이다. 이곳에서 관객들은 완성된 장면을 ‘본다’라고 말하기보다, 그 장면 사이에 ‘머물렀다’라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작품이 하나의 독립된 대상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부유하게 하는 열린 매개로 기능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과 이미 지나간 어제가 검은 구름의 장막 아래서 나란히 맞닿는 자리, 작가는 오늘도 여전히 시간의 문장이 일렁이는 곳으로의 항해를 지속하고 있다.
영천레지던시 입주작가 이향희 작가 평론 · 2025년 10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