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 하얀 밤
《이파리, 하얀 밤》 · 예술공간 의식주 · 2024.10.16–10.27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마찰되는 공기
많은 이들이 거주하는 이 도시에는 사건과 사고가 난무한다. 이곳에서 우리의 귀는 소란과 소음, 그리고 굉음에 노출되고 있다. 주거 공간은 아파트와 같이 표준화되었고, 이 반복되는 동일한 사각형 안에서 우리의 귀는 매우 예민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뛸 수 없게 되었으며, 아래와 위, 양옆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더불어 도시의 길은 수많은 이동 수단과 사람들의 발걸음을 몰리게 한다. 이곳은 일종의 견고한 신호체계가 일정한 방향과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신호체계 속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는 가능성의 세계관을 결말지으며, 사라짐의 공간을 널리 확장하고 퍼트린다.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은 이 견고한 시스템 아래 거대한 공동체의 공간으로 유인된다. 각종 미디어와 플랫폼, 아이콘은 그 부피를 늘려가면서 수많은 소음을 양산하여 우리가 기거할 수 있는 여백과 여지의 공간을 소진하게 한다. 결국, 우리의 오감이 쉬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점차 삭제되고 있다. 가능성은 소란스러운 장소에서 낙오되고 유실되어 간다. 이제 우리가 숨 쉬는 공기마저 우리 스스로를 타격하고 타인과 외부와의 마찰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이곳의 공기는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지 않은 채, 서로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이 깃든 사물과 이야기가 담긴 오래된 기념비는 순식간에 무너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림자와 이파리
이파리, 나무나 풀의 살아 있는 낱개의 잎을 일컫는 말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어둠이 사이 사이로 스며들고 있는 풀잎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 위로 눈발, 혹은 꽃 무리, 그 무엇이 흩날리고 있다. 해선이 그려낸 이 장면은 풍경이라고 말하기에는 좁고, 사물이라 부르기에 너무 넓은 시야를 품고 있다. 구분하기 어려운 화각으로 재현된 이파리들의 집합 사이로 작고 소박한 그림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찬란한 빛의 공간은 없지만, 적당히 자리 잡은 어둠의 조각들로 인해 작은 외형이 도드라지고 스쳐 지나가는 유사 눈발과 유사 꽃 무리가 시선에 채집된다. 이파리는 그 형태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화면에 단단하게 달라붙어 있다. 그는 그동안의 작업에서 이름이 없는, 이름을 잃어버린 것들에게 관심을 두고 구분되지 않는 가능성을 지닌 작은 장소와 사물들을 소환해 왔다. 낙화한 듯한 잎과 꽃들이 뭉쳐있거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단어, 혹은 완결과 결말을 구성하는 작고 사소한 것의 집합을 묘사하고 그려왔다. 이는 특정한 사건을 가리켜왔던 우리 인간에게 던지는 생존과 지속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해선은 보다 구체적인 출발점과 종착지에 도달한 이야기들을 내걸었다. 내리는 눈발에도 견고하게 붙어있는 이파리들의 교향곡이 들리고, 낱장의 페이지처럼 나열되고 분산된 화면에는 익명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바닥에는 서로에게 기대어 연결된 작은 조각의 집합이 놓여있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세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이 구성을 통해 작가는 일정한 관계와 연결을 적극적으로 조명한다. 검은 그림자를 허용하는 이파리들, 작은 페이지에 봉인된 개인의 역사, 그리고 서로에게 기대어 중력에 저항하며 곧게 서 있는 깨진 조각들은 각자 사라질 수 있는 시간을 포용하고 보호하며, 쓰러지지 않기 위한 몇 가지 방식들을 드러낸다. 이들은 모두 일정하게 관계되어 있으며 연결되어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부딪침과 맞닿음, 맞잡음은 소란과 소음, 굉음을 내지 않는다. 바람을 통과하게 하고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일인칭으로 침투한 사건에 빛을 통과하게 하여 모두에게 깃든 그림자의 시간을 엮어내게 한다. 모든 이들에게 드리워진 어둠의 시간을 뭉치게 하여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로 모이게 한다. 이곳에는 특정되었던 단편들이 모여 큰 염원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바다가 펼쳐지고 있다.
공평한 어둠
빛은 모든 곳에 닿지 못한다. 더불어 빛을 쫓는 우리의 눈은 공평하지 못하다. 구별하고 선별하고, 선택한다. 환경에 의해 사라지거나, 큰 사건으로 인해 가려져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다. 하지만, 어둠은 모든 곳에 자리하고 있다. 어둠이 자리하지 않는 곳, 자리할 수 없는 곳은 없다. 그 모든 곳에 마땅한 배경이 되어 언제든 많은 것들을 어둠으로 편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머금고 있다. 어둠의 입장에서 빛은 기이한 현상이다. 빛에 의해 나아가는 우리의 눈 또한 기묘한 현상이다. 우리가 가진 두 눈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기에 시야의 뒤안길을 살펴보지 못한다. 해선은 이번 작업을 통해 마땅한 어둠과 소박한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는 현상과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하나의 씨앗이며, 이야기의 시작이다. 어떠한 특정한 계기와 사고에 의해 발현된 시작의 장소이며, 차마 이름 부르지 못한 잠재된 어둠이다. 이번 작업에서 해선은 사소한 것, 사라지는 것들에게 빛을 가하고 손길을 내어준다기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그늘과 그들의 영토에 마땅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어둠 속으로 관객의 발길을 유도한다. 사라짐을 내재하고 있는 너와 나의 시간을 애달파하면서 견고하게 지탱할 수 있는 몇 가지 장면과 형태를 나열했다. 어둠과 빛을 나누는 것, 이곳과 저곳을 구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염원이다. 진동과 울림이 가득한 이곳에서 서로 붙어있고 지탱할 수 있는 무진의 시간을 복원하는 일이다. 해선은 어둠은 결핍이 아닌,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공평한 공간이라 말하고 있다. 그에게 어둠은 짙은 흑색이라기보다 한없이 포근한 드넓은 백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