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o Park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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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 PREFACES

VHS _ 너를 찾아서

《VHS _ 너를 찾아서》 · 예술공간 의식주 · 2025.08.16–08.31

1. 노출

낡은 서랍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할 때가 있다. 흐릿한 테두리와 바랜 색감 속에 담긴 장면은 분명히 과거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낯설다. 익숙한 얼굴이지만 어색한 표정을 지닌 채, 풍경은 기억 속 어딘가에서 당도할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다. 이 지점에서 어제의 장면은 오늘이라는 현재의 순간에서 분리된다. 이 생경함은 우리가 이미지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나를 설정하게 하고 흐르는 시간 선에서 기억과 기억의 사이 틈을 만들어낸다. 김승환 작가의 전시 'VHS _ 너를 찾아서'는 바로 이러한 거리감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사진이나 영상, 기록된 이미지들은 언제나 해당 순간을 붙들어 두는 듯 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는 오히려 장면 속 주체와 멀어진다. 이 괴리는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는 시점부터 극대화되었다. SNS나 클라우드, 실시간 영상 플랫폼에 업로드되는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행위가 아니라, ‘노출되고 소비되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는 기술적 변화가 아닌, 이미지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의 구조적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오래된 과거가 아니더라도, 바로 어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나의 모습들이 아득히 멀어지고 있다.

2. 다시 1인칭

‘모아레(Moiré)’는 영상에서 발생하는 간섭무늬를 뜻한다. 겹친 두 개의 패턴이 서로 충돌하며 생기는 시각적 왜곡을 지칭한다, 김승환은 이 모아레를 하나의 감각적 은유로 끌어온다. 현실과 기억, 주체와 타자의 중첩된 인식 구조를 상징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이베이에서 구매한 VHS 테이프들 속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일상, 기록되지 않은 사소한 사건, 의미 없는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이 낡은 기록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층을 따라 영상의 이면을 쫓아간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의 물성은 해상도 높은 오늘의 영상 속에 여전히 거칠고 불분명한 질감으로 남아 있으며, 과거는 다시금 현재의 빈틈으로 침투한다. 이는 정보의 과잉을 넘어서 이미지의 유출로 야기되는 통제되지 않는 복제와 확산에 대한 비유이자 투영일 것이다. 초상권, 프라이버시, 노출과 감시, 김승환의 작업은 이미지의 윤리적 경계와 더불어, 시선이 갖는 권력, 그리고 소비되는 삶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의식주는 총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작가가 수집한 VHS(비디오테이프)의 장면들을 디지털 영상으로 편집한 작업이 놓인 검은 장막 속 공간,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그 편집된 VHS 영상이 놓인 장소가 투사되는 불투명한 커튼이 옅은 이미지들을 재생한다. 편집본이 나열된 비디오 속 장면에는 작가가 이베이에서 수집한 영상들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오랜 시간 속에서 변형되고 변질된 장면들,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일상이 뒤엉킨 장면들이 재생되고 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년, 놀이터의 아이들, 찡그린 얼굴을 한 있는 사람,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가 만들어진다. 영상을 마주하면서 마주치는 이 낯선 타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공동의 기억이 촉발된다. 태어남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삶의 과정, 그것은 거의 모든 이들이 겪어야 하는 시간의 굴레이자 통로가 드러나는 장소가 된다. 또 다른 편의 장소는 이 영상을 바라보는 관객이 위치한 공간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이 있었던 공간, 그리고 그 틈을 뚫고 들어온 다른 관객, 혹은 장소는 일인칭과 삼인칭 시점을 교차하게 한다. 그리고 이내 우리의 뒤편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시선을,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게 하여 알 수 없는 불안과 마주하게 하고 있다.

3. 연민과 의심

김승환의 작업은 지나간 것들, 사라진 기록, 잊힌 장면들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불특정한 과거를 회고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주목하는 것은, 과거가 어떻게 ‘현재’를 구성하고, 그 흔적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이는 단순한 회상의 논리가 아니라,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실천적 질문이 된다. VHS라는 매체는 디지털과는 다른 시간성을 품고 있다. 감기는 테이프, 재생 중의 잡음, 끊김과 겹침의 질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록’의 개념을 어긋나게 한다. 그의 영상 작업은 고화질로 복원된 현재형이 아니라, 시간의 스크래치와 주름이 남아 있는 과거 완료형에 가깝다. 하지만 그 주름지고 빛바랜 이미지는 인간의 피부에 느껴지는 시간의 축적과 이야기를 함축한다. 그는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하나의 연대기를 구성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일기와 전기가 아닌, 모두의 삶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시간의 흐름, 사건의 흔적, 감정의 함축이다. 태어남과 죽음, 환희와 상실, 일상의 무수한 순간들이 편집되고 재조합되며 하나의 ‘비가시적 공동체’의 초상을 형성한다. 관객은 이 연대기의 일부로서, 각자의 기억을 작품 안에 투사하고 재구성하게 된다.

작가 김승환은 이번 전시에서 잠시 묻혀있었던 질문을 꺼낸다. 얼마나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그리고 흔적과 잔상에 대해 되묻는다. 그는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을 포착하고, 사적인 영상의 파편들로부터 공통의 감각을 끌어낸다. 이미지의 정치성과 기억의 윤리, 그리고 시간 속에 기거하는 우리 자신의 초상에 대해 연민의 시선과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살갗과 살갗이 닿을 수 없는, 점차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무심히 지나치는 수많은 얼굴과 초상에 엮인 감정의 파편을 되새기게 한다. ‘나와 타자’,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 사이의 틈을 들여다보게 하며, 사이를 유영하는 우리 모두의 불완전함을 응시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