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o Park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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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 PREFACES

Skin-Ship

《Skin-Ship》 · 예술공간 의식주 · 2026.05.23–06.14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기획 및 서문: 박소호

협력기획: 강다원

주관·주최: 예술공간 의식주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주체 지원사업

사물은 ‘점유’되는 것이었다. 공간을 차지하고 무게를 지니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색하거나 마모되는 물리적 실체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대다수의 대상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대비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현상과 인화의 과정, '기계 신체'를 작동하며 얻는 기계적 맞물림의 경험은 대상을 촬영하는 순간과 접촉하는 하나의 체감 형상을 선사한다. 이는 물리적인 각인이다.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한 장의 종이 위에 기억과 시간이 채집된다. 그리고 이내 필름은 점차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곰팡이가 피고 잔상이 되어 생애주기를 거쳐 간다. 반면 디지털 사진은 무한히 복제되는 동시에 더 빠르게 소진된다. 데이터 또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낡고 소모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자주 망각하곤 한다. 서버의 열기 속에서, 그리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미지의 파도 안에서 데이터는 단 한 번의 밀도 있는 응시조차 받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사물과 시선 사이의 거리는 무감각의 세계로 멀어진다.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가운 액정의 매끄러운 표면뿐이며, 사물이 가진 저항감은 사라진다.

지금 우리의 몸은 노동이나 운동이 아닌, 잡히지 않는 데이터의 공간으로 접속한다. 정보의 축을 지탱하기 위해 신경은 경직되고, 신체는 무거운 피로감에 짓눌린다. 이제 몸은 사물을 만질 수 없다. 스마트폰의 무게를 견디며 가상의 중력에 눌린 채 서로의 이름을 지워가고 있다.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느끼지 못한 채 시공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황유윤은 사물로부터 멀어진 감각을 ‘낡은 것’들에 대한 응시를 통해 다시 불러낸다. 그의 작업에서 오래된 물건은 시간을 정지시킨 박제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온 생명에 가깝다. 손때 묻은 가구의 모서리, 수천 번 열고 닫으며 느슨해진 경첩의 소리에는 사물이 견뎌온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이는 시선이 사물의 표면을 더듬으며 질감을 느끼는 촉각적 체험이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오래된 가구의 표면을 볼 때, 우리는 거친 질감 뒤에 묻어 있는 따뜻한 온기를 기억해 낼 수 있다. 눈으로 만질 수 있는 가구의 표면은 매끄러운 플라스틱이나 유리가 줄 수 없는 시간의 깊이를 드러낸다. 오래된 책장은 책의 무게를 견디며 조금씩 휘어지고, 가죽 소파는 앉는 사람의 체형에 맞춰 주름을 잡는다. 사물은 사용자의 흔적을 기록하고, 사용자는 사물의 변모를 통해 자신의 시간을 확인한다. 이 상호작용 속에서 사물은 단순한 객체를 넘어 ‘나’의 일부가 된다. 감촉의 시간은 곧 관계의 시간이다. 사물의 표면을 더듬는 행위는 그 사물과 함께 보낸 세월을 어루만지는 것과 다름없다. 황유윤은 사물을 통해 무감각의 늪에 빠진 우리를 촉감의 숲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이 숲에는 하나의 방이 존재한다. 이곳에는 마모된 것들이 모여 있다. 수십 년을 견뎌온 나무의 나이테, 세월의 풍파가 새겨진 피부의 주름, 시간이 깎아내고 마모시킨 흔적들이 이 공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된다.

오래된 표면과 피부, 시간 속에 머물렀던 사물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빛이 드리워진 공간에 세워졌다. 수집된 것과 그려진 것의 개념이 교차하고, 도구적 공간의 ‘쓸모’에 대한 이분법적 경계가 무너진다. 잡히지 않고 드러나지 않았던 무감각의 세계 속에서, 작가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공허의 공간과 화면을 다시 길어 올린다. 액자와 그림, 사물과 도구의 차이가 없는 이 평등한 응시의 장에서 작가는 대상의 외형이 아닌 그것이 품고 있는 ‘흉터’에 주목한다. 매끄러운 가상의 이미지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시간의 퇴적층은 사물의 피부 위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작가가 드러내는 흉터는 과거의 물리적인 충돌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것을 받아내고 흡수하여 만들어진 시간의 궤적이다. 황유윤은 이 흔적의 무게를 감각하며 그 틈바구니에서 잠을 자고, 책을 읽고, 사유한다.

이번 전시 《Skin-Ship》에 설치된 작업은 빽빽한 사물의 숲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이다. 이곳에는 마모되고 닳아 없어질지라도 끝까지 무게를 포기하지 않는 사물들과 인간의 몸이 맺는 연대기가 있다. 시간이 마모시킨 흔적들이 몸을 감싸안을 때, 소진되었던 신체는 다시금 피부를 돋아나게 한다. 채우는 사람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그가 쌓아 올리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에 깃든 시간과 감촉, 그리고 잃어버렸던 자신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려낸 이미지들은 특정 장면 속에 고정된 정물이라기보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통로이자 열쇠가 된다. 지난날에 봉인된 감촉, 잃어버린 통증, 잊혀진 기억이 이곳에 있다. 그것들은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우리의 눈을 운동하게 하고 발을 움직이게 한다. 동시에 끝끝내 살아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시간의 감촉을 피어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