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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 PREFACES

EARWORM

《EARWORM》 · 예술공간 의식주 · 2023.12.09–12.30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기획: 윤형신

진동하는 계절

12월부터 3월 무렵까지 대기의 온도는 대부분 영하권을 유지한다. 이 기간을 겨울이라 한다. 동물들은 동면에 진입하거나, 곤충들은 보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유기체, 생명은 주로 겨울 이후부터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한다. 열매와 식량들 역시 봄에서 시작하여 가을에 만개하고 충만을 이룬다. 이들에게 긴 잠에 이르게 하는 시간은 바로 겨울이다. 하지만, 곤충이 가장 많이 진동하는 여름, 혹은 그 종에게 가장 치열한 어떤 시간을 떠올려 볼 때, 살아 있다는 동시에 죽음의 이미지도 함께 동반되어 따라온다. 생태계의 시스템을 시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태어남과 죽음으로 치닫는 계절과 순서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시스템과 구조라는 3인칭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의 관점으로 들어가 보면 눈을 감고 뜨는 밤과 낮, 잠과 깨어 있음으로 인지된다. 즉, 시스템 안에서 존재하는 개별자의 움직임은 눈을 뜨고 감는 현실과 꿈, 하루, 혹은 계절로 대변되는 삶의 진동으로 향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눈을 뜨고 감는 시간 사이에서 위태로운 춤을 추며 경이로운 계절을 만들어낸다.

이상하고 기이한 현상

잠은 매우 효율적인 도구이다. 무와 죽음으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인력과 척력이 작용되어 파고를 만들어내고, 시간을 영위하는 생명은 절대적인 잠을 통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내일을 기약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모든 생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늘도 잠은 또 다른 시공간이다.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삶의 껍데기, 흔적이라고 불리는 이 잔상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부유하고 있다. 작가 고현아는 이러한 시간의 허물을 차곡차곡 모아 단단하게 붙여낸다. 그래서 그는 그려낸다기보다 담아내고 잡아두고 묻혀내는 작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현아는 잠에 내재되어 있는 흔적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내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을 위한 진동과 파동을 진열한다. 이는 ‘살았던’에 내포된 있는 과거형, 화석화된 죽음이 아니라, ‘살아내었던’에 담긴 가죽과 공기의 맞닿음으로 대변되는 삶의 치열함이다. 수분이 빠져 건조해진 피부, 바스러진 껍질에서 ‘없지고 남은 것’을 목격한다면, 작가 고현아의 작업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진동하는 풍경을 목격할 수 없다. 고현아는 단단한 돌을 갈아내듯 살아내는 것들의 마찰음을 화면에 담아내고, 유기체처럼 유영하는 조직을 굳혀 세밀하고 섬세한 시간의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이를 어떤 오브제나 사물의 형태와 모양을 쫓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진동이 지닌 파동을 따라가다 보면 얇은 껍질 속에 숨겨진 두껍고 깊은, 숨 쉬는 풍경과 마주 할 수 있게 된다.

바스러지는 껍질

그려졌다기보다 무언가의 흔적을 머금고 있는 껍질에 가까운 고현아의 화면은 바스러질 듯 약해 보이지만 견고한 질감을 지니고 있고, 녹아내릴 듯하지만 고정된 물성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장면을 보고 재현했다기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식의 껍질, 삶을 흡수하고 내뱉어내는 땅의 표면과 닮아있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 일종의 권력으로 작용될 때가 있다. 우발적인 사고와 재난, 그리고 한정된 수명 등, 한계를 머금고 있는 시간을 인지하면 우리는 때때로 그 권력에 사로잡혀 두려움과 휩싸이게 된다. 누구에게나 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는 생태계의 시스템아래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맞닥뜨리곤 한다. 작가 고현아의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죽음을 전재로 하는, 죽음을 동반하는 건조한 표피의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다. 단순히 곤충들의 껍질과 허물을 닮았다고 하기에는 거대하고 숭고한 이 퇴적된 피막은 바스러지고 녹아내릴 듯한 황혼의 피부와 닮았다. 그가 두려움으로 대변되는 감각들을 화면에 의도적으로 담아내지는 않았겠지만, 이를 통해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시각이 가지는 기표와 기의를 떠나 진동이라고 하는 소리와 만져짐, 즉, 청각과 촉각으로 치환되는 시간의 모습이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이곳과 저곳, 이분법으로 시공간을 해석하다 보면 결국 사방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어와 문자가 만들어낸 형식과 법칙의 시스템을 벗어나 치열하게 진동하는 껍질을 인지할 때 우리는 다른 개체와 연결될 수 있고, 비로소 함께 치열한 진동을 만들며 함께할 수 있다. 작가 고현아의 작업은 한정된 시공간에 묶인 모든 이들과 잠을 향해 달려가는 생태계 공동체에 대한 격렬한 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