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o Park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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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 PREFACES

응시의 시간

《발화점 Ignition Point》 · 갤러리 이목

1. 뿌리와 줄기

일분, 한 시간, 하루를 꾹꾹 눌러 담아 그리는 작가가 있다. 작가 박준우다. 그는 스스로의 시간과 공간에서 스칠 수 있는 이미지를 화면에 담아낸다. 가장 단순할 수 있는 이 재현의 방식, 회화라는 장르가 가장 오랫동안 고수해 온 관찰과 기록은 작가에게 있어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방식이다. 이 보편적인 그리기가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그림들이 전시공간에 나열되는 순간 하나의 파노라마, 드라마틱한 서사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있어 솔직하다는 표현은 너무 추상적이고 넓은 범주인듯하다. 화려한 수사가 없는 담백한 일기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그가 그린 문장에는 스스로를 지칭하는 주어의 자리가 없다. 다만, 누구나 소유할 수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장면과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 낱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가 지내온 어제의 뿌리와 그에게 다가 올 내일의 줄기가 자연스레 그려진다.

2. 응시를 위한

‘응시’와 ‘멍 때리기’는 같은 듯 다르다. 바쁜 일상에서 빠른 발걸음과 손놀림에 익숙해지다 보면 피로함과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내 이 습관에 짓눌려 스스로의 공간을 잃어버리고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공간을 유영하게 된다. 멍때리기는 바로 이 순간 발현된다. 특히, 도시에서의 조직화된 프레임에서 하루를 지내다보면 일순간 찾아오는 본능적 ‘멍 때리기’와 마주치기 쉽다. 하지만, 이때의 멍 때리기는 피로와 무기력의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고로만 작용 할 뿐,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박준우는 응시의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며 눈과 장면의 명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디지털이 만든 복제 이미지와 다르게 현장에서 사생된 풍경은 몰입과 집중을 가능하게 하고 응시의 문을 만들어낸다. 오늘의 이미지는 대부분 단단한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두 눈에 맺힌다. 모바일 위의 터치 화면, 그리고 손톱보다 작은 렌즈, 빛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필름 사이로 편집된 장면들이 수집된다.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우리의 눈은 허공을 유영한다. 어느 곳에도 탈출구는 없으며, 점차 반복되는 편집과 편집의 굴레로 잠식된다.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이 유리의 방은 시각의 과로를 유발한다. 작가 박준우는 이 유리막을 없애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그는 사생한다. 현장으로 나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기력과 피로함을 만들어내는 이 유리막을 걷어내는 일인 것이다.

3. 사생의 시간

하지만, 사생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날씨는 사생의 조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발적으로 내리는 비와 눈,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의 방향, 온도와 습도는 그리기를 멈추게 하거나 거의 다 그려진 화면에 손상을 가할 수도 있다. 작가는 사생으로 마주칠 수 있는 요인들과 적극적으로 마주한다. 지나가는 행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간적으로 변화하는 날씨에 순응하며 오늘의 그리기를 잠시 멈추기도 한다. 이렇게 수집된 장면과 응시의 일기들이 모여 하나의 전시가 된다. 화첩에 그린 한 시간과 일분이 모여 여러 날의 서사를 만들어내거나 온전한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응시의 파노라마를 만들어낸다. 최근, 박준우 작가의 작업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텍스트, 문장의 등장이다. 이 글들은 그가 그린 화면을 묘사하거나 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려진 대상을 연장하여 상상하게 하거나 그 시작을 유추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된다.

4. 생동하는 풀내음

도시는 모바일이 주도하는 복잡한 네트워크와 카테고리의 수많은 교차지점을 만들어낸다. 소비의 범주는 자본을 넘어서 시간과 공간을 잠식하게 하고 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은 점차 비좁아지고 있다. 데이터는 데이터를 양산하고 우리가 만들고 창출할 수 있는 확장의 공간을 삭제한다. 특히 온라인에서 시각 이미지는 우리의 눈 깊은 곳까지 다가와 취향과 성향을 파악한다. 작가 박준우는 눈앞에 놓인 디지털 필터를 걷어내기 위해 오늘도 응시할 수 있는 공간과 오브제를 찾아 나선다. 거대한 사건과 담론을 다루기보다 자신의 반경 안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사고의 현장과 마주치면서 수확한 몰입의 낱말들을 하나하나 나열한다. 때로는 무언가를 채우고 쌓기보다 덜어내고 비워낼 때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만나곤 한다. 그의 파노라마에서는 콘크리트에서 맡을 수 없는 진한 흙내음과 그 어느 바람보다 시원한 풀내음이 진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