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o Park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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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 PREFACES

피부 위의 착시

1. 오늘을 여는 손

0과 1만으로 많은 것들을 생산하는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손 끝의 감각을 무뎌지게 했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서로의 체온과 감각을 공유하지 않은 채, 단단한 유리를 통해 가상의 사물을 수집하고 퍼트린다. 펜과 종이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건과 사고가 공유된다. 그만큼 봐야 하는 세계와 공간은 저만치 멀어지고 눈앞의 정보와 이미지에 현혹되고 소비된다. 우리의 손은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와 유사한 망각의 문을 스스로 열게 되었다. 보편적이고 익숙한, 너무나 당연하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왔던 촉감의 끈이 뒤집고 전복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의 눈은 사물 고유의 질량과 밀도보다 가볍게 휘발되는 부피의 표면, 즉 이미지라는 껍질에 더욱 주목한다. 직접 다지고 쌓아 올린 깊이의 공간과 멀어지면서 서로의 거리도 점차 벌어지게 되었다. 이제는 육성조차 부담스러워 손끝에서 발화되는 짧고 간결한 기호에 더욱 안도한다.

2. 피부로 돋아나는 것들

피부는 온도와 밀착을 통해 외부와 관계를 맺는다. 작가 이상덕은 피부를 감싸고 있는 0과 1의 껍질을 벗겨내어 단단한 유리막으로 가려진 우리의 눈에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제안하고 소개한다. 그는 화면에서 착시를 의도적으로 설계하여 상상과 망각, 안정과 불안의 공간을 동시에 새겨 넣었다. 사물에 대한 인지가 줄어들고 가상의 이미지와 텅 비어 있는 이야기가 난무하는 캄캄한 방에 날카로운 선과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창을 만들어낸다. 이는 시각의 전환을 위한 통로인 동시에 우리에게 던지는 밀도와 부피에 관한 질문이다. 오늘의 눈은 수많은 정보의 오류와 쾌락을 위한 소비로 유입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시각과 시선은 점차 납작하고 얇아질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된다. 앞과 뒤, 아래와 위,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분명한 경계가 만들어지면서 밤과 낮, 내일과 어제, 안과 밖이 교차하는 미세하고 세밀한 통찰의 영역을 잃어버리고 있다. 동시에 사물에 잠재되어 있는 여러 가능성과 확장의 통로가 좁아지고 있다. 우리의 피부는 더 이상 깊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이 두꺼운 피부 위의 봉인을 풀어내기 위해 작가 이상덕은 닫혀있는 공간의 두텁고 넓은 장막을 한 겹씩 걷어내어 시공간의 전방위를 넘나들 수 있는 창을 만들어낸다.

3. 착시로부터

어쩌면 디지털 공간뿐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 또한 실재하는 사물의 다른 면일 수 있다. 우리가 통찰할 수 있는 영역은 오직, 다섯 가지 감각 안에서 존재하며, 시간 한계 안에 있는 일정한 좌표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덕은 모든 것이 착시와 망각일 수 있는 이 세계의 속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콜라주를 활용하여 종이의 두께와 깊이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회화의 재현효과를 활용해 가상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종이와 종이의 경계, 선과 선의 깊이, 장면과 장면의 간극을 허물어 서로의 영역을 교차하게 한다. 관객은 작가가 만든 착시의 평면에서 사물인 것과 사물적인 것이 만나는 평면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 관객의 시선은 빛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그림자에 머물게 된다. 사물과 그림자, 그리고 빛의 경계가 분명한 동시에 흐려지는 교차의 풍경에서 관객의 시선은 해답을 찾기 위해 화면 곳곳을 누빈다. 그리고 실재에 대한 질문과 의문을 시작으로 아래로 지탱하는 뿌리와 위로 뻗어 나는 가지의 구분점이 마모된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이내 한 곳을 향해 흘러가는 파노라마 구성을 지닌 프레임 속에서 중력을 해방하고 앞으로 가는 시간의 속성을 뒤집는 공간의 열쇠를 찾을 수 있게 된다.

4. 장막을 걷는 손

무한과 한계는 결국 같은 지점을 두고 교차하며 우리가 의지로 선택 가능한 항목일 뿐이다. 이상덕 작가는 유토피아와 이상적인 공간을 찾기 위해 착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편리와 효율을 위해 달려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세계가 만들어낸 망각의 허물을 벗겨내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상덕의 만들어낸 화면을 착각과 착오를 목적으로 하는 착시의 화면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봉인한 통감각의 실체를 깨우게 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앞으로 흐르는 시간이 아닌, 그 자리에 새겨진 통찰 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상덕은 우리 자신에게 새겨 놓은 이름과 더불어 외부세계, 저 너머의 공간에 닿을 수 있는 이정표를 만들어낸다. 이는 ‘앞으로’, ‘내일’, ‘언젠가’처럼 미래만을 위한 기준과 안내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장소와 시간을 모두 통합하여 ‘지금, 여기’에서 그려낼 수 있는 광활한 감각의 경치를 일깨우기 위함이다. 많은 이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 작가 이상덕은 오늘도 자신의 예민한 손으로 날카롭고 부드러운 풍경의 껍질을 벗겨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