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조작이라는 쌍둥이 자리
《Non-Non》 · 청년예술청 SAPY 화이트갤러리 · 2026.09.05–09.12
1. 유리조각
빛을 굴절시키는 작은 유리 조각, 렌즈는 인류사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빠른 진화를 거듭해 왔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현실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감시하며 복기하는 장치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여기에 AI의 급속한 발전이 맞물리면서, 렌즈는 재현과 기록이라는 오랜 임무마저 초월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을 떠돌아다니는 이미지와 정보들을 흡수하고 학습한 끝에, 전에 없던 이미지를 스스로 생성해 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지금까지는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의 이미지와 실재 이미지 사이에 모종의 격차가 존재해 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예측하듯, 그 간극은 머지않아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좁혀질지도 모른다. 일찍이 빌렘 플루서(Vil←m Flusser)는 카메라를 인간의 의도가 투명하게 통과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의 프로그램에 따라 세계를 재조합해 내는 '검은 상자'로 규정한 바 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오늘날의 렌즈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창이 아니라, 스스로의 논리로 이미지를 연산해 내는 장치, '기술적 형상(Technobild)'을 산출하는 주체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새로운 생산 방식이 지닌 함의는 단순히 가짜 뉴스나 거짓 이미지를 양산하는 사회적 부작용에 그치지 않는다. 렌즈는 이제 빛을 모아 대상을 현상하던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라, 방대한 데이터를 통과시켜 새로운 환영을 능동적으로 조합해 내는 거대한 알고리즘 그 자체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물리적 신체마저 벗어던지고 있다. 한때 광물에 불과했던 이 투명한 매개체는 이제 신체 없이도 무수한 이미지를 생산하고 복제하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물리적인 영역을 재편하고 있다.
2. 오해와 조작이라는 쌍둥이 자리
앞서 짚은 '신체 없는 렌즈'는 두 작가의 작업에 동일한 무게로 새겨진 공통 개념이라기보다, 이들의 화면을 마주하기에 앞서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어떻게 달라지고 진화하고 있는지를 먼저 짚어보기 위한 전제에 가깝다. 김은정과 반채연, 두 작가는 이처럼 진화한—혹은 기형적으로 변이한—시각 매체로 인해 현상되는 장면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화면을 다시 마주 보게 만듦으로써,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무한히 복제되는 이미지의 통로를 노출시킨다. 이를 위해 두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층위의 눈을 차용하고 있다. 김은정에게 이 렌즈는, 조작되고 편집되고 수집된 이미지들이 단순히 네트워크 환경을 부유하는 정보 체계가 아니라, 분명히 독립적으로 구축된 개별적인 눈이자 동시에 수많은 타인의 시선과 연결되어 발생한 고통의 시선이 되는 지점의 출발점으로 자리한다. 반면 반채연은 지극히 일상적인 응시와 관점에서 작업을 길어 올리지만, 그 응시 역시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연결 가능한 바라보기라는 점에서 신체 없는 렌즈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특히 반채연의 화면에는 프레이밍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데, 이때 마주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대면이 아니라 카메라와 인물의 대면이며, 이 간극을 상쇄하는 것이 바로 응시, 그리고 '더블'이라는 개념이다. 결국 디지털 렌즈가 만들어낸 바라보기의 방식과 조건은 이미 크게 달라졌고, 수많은 이들은 이 변화된 조건과 연결된 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지점에서 두 작가의 작업은 렌즈라는 하나의 사건이자 현상으로 무수히 분할된 오늘의 바라보기 안에서, 각자 또 다른 하나의 바라보기를 인지하게 한다.
김은정의 작업은 'AI 슬롭(AI Slop)'으로 대변되는 기술 시대의 시각적 찌꺼기들을 적극적으로 화면에 끌어들인다. 작가는 AI가 생성한 소스와 수집된 디지털 이미지 등 출처가 불분명한 파편들을 낯선 공간에 담아낸다. 작업에 등장하는 기괴한 오브제와 뒤엉킨 사물, 맥락과 방향성이 결여된 장소 등은 이 생경함을 강조하고 있다. 물리적 논리가 결여된 왜곡된 신체와 같은 조작된 형상들은 얼핏 AI가 맥락 없이 쏟아낸 조악한 잔여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 기괴한 파편들을 단순히 기술의 오류로 치부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모습과의 충돌을 활용하여, 시선의 불편함을 유발하며 '보는 것'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물에는 인간의 의도가 없지만, 인공적으로 연출된 디지털 이미지에는 필연적으로 생산자의 의도가 기생한다. 작가는 이 기형적인 왜곡과 화려한 표면 속에서 현대 사회가 진실을 감각하고 소비하는 방식의 맹점을 들춰내며 리얼리티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서 조작하는 주체와 조작당하는 대상의 경계는 점차 흐려진다. 누군가는 이미지를 능동적으로 편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편집된 이미지 위에 서서 그것을 다시 소비하고 유통시킨다. 이는 기술의 오작동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이라 믿어온 감각 체계 자체에 뚫린 거대한 균열이다. 작가는 이러한 조작과 왜곡을 어떤 부정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원흉이나 오류로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기형적 파편들은 디지털 공간 안에서 우리 신체가 외부로 연장되어 형성한 새로운 '필터'가 현상해 낸 가장 정확하고 실재적인 풍경에 가깝다. 작가는 지금 우리 눈에 맺히는 이 조작된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새롭게 재편된 우리의 지각적 현존을 증명하고 있다.
반채연의 작업에서는 익숙한 대상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생경함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편안하고 친숙한 상태에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낯선 형태로 불쑥 튀어나올 때 마주하게 되는 기이함이라는 감각과 유사하다. 우리는 완전히 낯선 대상을 볼 때보다, 평범하고 익숙한 얼굴이 미세하게 틀어져 있거나 논리에 어긋날 때 훨씬 더 깊은 원초적 동요를 느끼곤 한다. 빛이 소거된 건조한 화면 속, 복제된 듯한 피사체의 직설적인 정면 응시는 철저히 통제된 이미지이자 무언의 명령처럼 관람객을 똑바로 마주한다. 작가는 작품 속 인물과 관람객이라는 두 개의 일인칭을 교차시키며 '마주 봄'이라는 충돌의 사건을 일으킨다. 특히, 인물들의 바라봄을 통해 상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입의 모양이다. 특정한 이야기, 대사,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입으로 인해, 작가가 그려낸 인물들의 눈은 더욱 명확히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주변 정황이나 프레임 바깥의 설명이 철저히 삭제된 채 오직 '봄'이라는 행위만이 남겨진 이 조건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필연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기에서 오해는 단순한 오독이나 착오가 아니다. 부재하는 맥락 속에서 관람객이 각자의 서사를 투영하여 여백을 능동적으로 직조해 나가는 과정이다. 정면으로 직시할 때 익숙한 얼굴이 오히려 낯설어지는 감각, 혹은 차마 직시하지 못해 시선을 피할 때 생겨나는 그 회피의 틈새를 관람객 스스로 채워 나가는 상상력의 발생에 가깝다. 대상과 대상이 마주치고 충돌하는 이 도발적인 바라봄은 '본다'라는 인지 자체를 또렷하게 남기며 수많은 이야기를 파생시키는 적극적인 장치로 작동한다. 결국 작가가 구축한 이 기이한 마주침은 타인과 온전히 마주 보는 일조차 점차 어려워진 오늘날, 우리를 회피 없이 다시금 대상을 응시하도록 이끈다. 오해의 틈새를 뚫고 나와 시간을 들여 눈을 맞추는 이 행위는, 빠르게 휘발되는 이미지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직시한다는 것'의 무게와 눈과 눈이 부딪히는 '만남' 자체가 지닌 두께를 묵직하게 피어오르게 한다.
3. 납작한 세계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스크린은 입체적인 현실을 0과 1의 숫자 데이터로 압축한 납작한 공간이다. 김은정의 쏟아지는 왜곡된 파편과 장소, 반채연의 서늘한 응시는 모두 이 납작한 세계의 표면 위에서 자라난다. 물리적인 렌즈가 숫자와 데이터로 대체된 지금, 이 납작한 공간은 더 이상 현실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현상계와 연결된 기이한 생태계가 되었다. 오늘날 시각을 지배하는 이 거대한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군집은 이미 인간의 인지 범위 안으로 연장되어 기생하는 유기체로 진화했다. 전체의 규모를 가늠할 수도, 만질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하고 복잡한 이 기술적 실체는 역설적이게도 스크린이라는 가장 납작하고 매끈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끈적하게 우리의 일상에 들러붙는다. 전체를 볼 수 없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위상학적 그림자와 왜곡된 이미지를 통해 비로소 그 압도적인 존재를 체감할 수 있다. 전시장에 걸린 두 작가의 작업은 이 납작한 세계가 결코 얄팍하거나 가볍지 않음을 증명한다. 조작된 이미지와 복제된 시선이 난무하는 표면 아래에는 진실과 가상, 친숙함과 기이함,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되묻는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관람객은 이들이 펼쳐놓은 납작한 화면을 마주하며 스크린 너머의 무언가에 의해 자신이 어떻게 응시당하고 있는지를 되묻게 될 것이다. 렌즈의 물리적 실체가 소거된 시대, 이곳의 진실은 저 너머의 초월적 공간이나 도래할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바로 여기,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의 시선과 충돌하며 맺히는 바로 그 얇은 표면 위에 자라나고 있다. 이번 전시 《Non-non》은 이 조건을 겨냥하고 있다. '아닌 것'을 다시 부정하는 이중 부정의 언어는 하나의 의미나 상태로 규정되지 않는 경계, 그 자체를 가리킨다. 김은정과 반채연 두 작가는 허구와 실재, 감각과 이미지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와 정동을 회화로 탐구하며, 이 납작하고도 결코 얄팍하지 않은 표면 위에서 우리가 지닌 인지적 시선의 갱신을 유도하고 있다.

